10년 만에 돌아온 아이리쉬 록의 살이있는 신화
The Cranberries의 신작 [The Roses]
10년만의 재결합 새롭고도, 진한 오리지널리티가 묻어나는 신작 [The Roses]
밝고 상쾌한 느낌의 첫 번째 싱글 Tomorrow 수록! 강렬한 록 넘버 두 번째 싱글 Show Me 수록.
“2012년 최고의 음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PopMatters
“당신이 기대한 것 이상의 매력을 선사하는 앨범” - Time
“현재 영국의 최고 여성뮤지션들인 Adele 이나 Florence & The Machine 은 Dolores 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이 음반을 통해 알 수 있다” - RollingStone Magazine
* 앨범 해설
재결합과 함께 우리 곁에 돌아온 1990년대 아일랜드 모던 록의 대표 밴드,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의 2012년 최신작이자 6번째 정규 앨범, [Roses]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는 적어도 1990년대만큼은 아일랜드의 록 씬에서는 U2에 이어서 세계적으로 대중에게 가장 폭넓게 인기를 얻은 록 밴드였다. 그리고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씬의 융성과 함께 갑작스럽게 부각되었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에 대한 평단의 주목, 그리고 제퍼슨 에어 플레인(Jefferson Airplane)과 하트(Heart), 블론디(Blondie)이후 여성 보컬리스트가 프론트 우먼으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대중을 사로잡는 록 밴드들의 연이은 등장의 선봉에 섰던 팀이다. 게다가 한국 음악 팬들에게는 이들이 남긴 몇 곡의 음악들 -특히 'Dreams'와 'Ode to My Family'-은 당시에는 거의 '국민 팝송'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다. 비록 그것이 지금의 '욘사마'를 처음 알렸던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와 영화 '중경삼림' 속에서 왕정문의 목소리로 번안된 '몽중인(夢中人)'의 힘이었다 해도, 결국 지금 와서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져 가도 이 노래들은 여전히 우리나라 음악 팬들의 올 타임 리퀘스트로 존재하고 있기에 아직도 팝 팬들에게 이들의 이름은 친근하다.
여성 보컬리스트 돌로레스 오라이어던(Dolores O'Riordan)이 들려주는, 마치 같은 아일랜드 선배 뮤지션인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 Connor)가 보여준 충동과 분노의 어두움을 약간 줄인 대신 아일랜드 특유의 음악적 정서는 강하지만 훨씬 온화하고 따뜻함을 품은 보컬은 이 밴드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당시에 국내의 얼마나 많은 주류 여성 록 보컬들이 이 창법을 따라 하려고 애썼는가는 1990년대의 우리 가요 씬을 되돌아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당시 우리의 관심은 오직 그것에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녀가 훌륭한 싱어송라이터였던 건 사실이지만, 과연 나머지 멤버들은 들러리였을까? 아니다. 실질적으로 밴드의 음악은 그녀와 기타리스트 노엘 호건(Noel Hogan)과의 공동 작업으로 이뤄진 곡이 대부분이었다. 멤버들이 펼치는 어쿠스틱 연주의 서정성과 강한 트랙들에서의 정제된 펑크 록적 힘까지 보여주는 군더더기 없는 연주, 그리고 돌로레스와 노엘의 작곡능력 조화가 더해져 밴드는 우리가 1990년대에 기억하는 그 주옥 같은 곡들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2000년대 전반기에 밴드가 해체를 한 이후 돌로레스의 솔로 활동이 예상보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들이 결국 돌로레스와 멤버들이 다시 밴드의 모습으로 뭉쳐 우리 곁에 돌아온 것은 사필귀정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 덕에 우리는 다시 이들의 '화학작용'을 음악으로 들을 새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이보다 반가울 순 없다.
1990년대 아일랜드 록의 첨병으로 세계를 장악했던 크랜베리스의 음악 여정
밴드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알게 되는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밴드의 최초 결성은 돌로레스가 아니라 노엘 호건(Noel Hogan)과 베이시스트 마이크 호건(Mike Hogan) 형제가 주도했었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은 1989년 아일랜드 리메릭에서 드러머 페르걸 로러(Fergal Lawler), 그리고 보컬리스트 니얼 퀸(Niall Quinn)을 영입해 처음에는 크랜베리 소우 어스(The Cranberry Saw Us)라는 이름의 밴드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1년 후 니얼이 밴드를 탈퇴하면서 밴드는 새 보컬리스트를 영입한다는 광고를 했고, 이에 돌로레스가 반응해 오디션에 참여했고, 멤버들은 그녀가 작곡해 온 'Linger'의 다듬어지지 않은 데모 버전을 듣고 바로 그녀를 멤버로 받아들였다.
그녀를 영입한 후, 밴드는 자신들의 곡을 홈 레코딩으로 녹음한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이 테이프는 지역에서 300장 이상 팔렸다. 그리고 새로운 데모 테이프를 영국 전역의 음반사들에 보내 의사를 타진했고, 결국 아일랜드(Island) 레이블과 계약을 맺었다. 1992년 초 이들은 첫 앨범 작업을 시작했고, 중간에 프로듀서를 교체하고 녹음을 아예 다시 하는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1993년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로 록 씬에 신선한 데뷔를 했다. 사실 영국에서는 'Dreams'가 이 앨범의 첫 싱글로 발표되었으나 그 당시의 반응은 별로 크지 않았다. 후속 싱글 'Linger'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밴드는 스웨이드(Suede)의 오프닝 밴드로 꾸준히 영국을 돌며 팬층을 넓혀나갔고, 그 결과 두 곡 모두 1994년에 다시 영국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연이어 미국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이들의 인기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현재의 위상을 만들어준 대표적 앨범은 단연 2집 [No Need to Argue](1994)였다. 미국 시장에서만 7백만 장, 영국에서는 트리플 플래티넘 등 5개국에서 플래티넘 앨범 인증을 기록하며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이 앨범을 통해 밴드는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을 분명히 했다. 특히 'Zombie'나 'Ridiculous Thoughts'과 같은 1집보다 더욱 디스토션 강하고 어두운 색채의 곡들이 추가되면서 이들도 마침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얼터너티브 록 밴드 물결의 한 축이 되었다. (물론 아시아 지역에서는 'Ode to My Family'와 'I Can't Be With You' 등이 더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당시 밴드의 스타덤은 밴드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점점 더 돌로레스에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의 여파였을까? 3집 [To the Faithful Departed](1996)은 'Salvation', 'Free to Decide', 'When You're Gone' 등 전작의 히트 공식을 어느 정도 계승한 트랙들이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2집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그 빛이 약간 가려졌다. (그래도 영국 시장에선 골드 앨범, 미국에서는 200만장 이상을 팔았다.) 그리고 돌로레스가 솔로로 독립할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밴드의 미래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팬들도 서서히 늘어갔다. 다행히 이들의 투어는 해를 거듭할수록 관객 수가 늘어나며 승승장구했고, 3년 후 발표된 4집 [Bury The Hatchet](1999) 이후에도 이 흐름은 이어졌다. 비록 앨범의 상업적 반응은 앞선 앨범보다 저조했지만, 'Promises'나 'Animal Instinct', 'Just My Imagination' 등을 히트시키며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이어진 이들의 세계 투어는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밴드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과거와 같진 않았다. 5집 [Wake Up And Smell The Coffee」(2001)는 밴드 커리어 사상 최고로 저조한 인기를 얻었고, 싱글 <Analyse>는 빌보드와 영국 록 차트에서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첫 베스트 앨범 [Stars - The Best of 1992 - 2002]로 조용히 2000년대 초반을 보낸 밴드는 2003년 (당시에 새 앨범을 위한 세션에 대한 소식이 들렸음에도) 조용히 그룹의 활동 중단, 해체를 결정했었다. 그 후 돌로레스는 솔로 활동을 통해 2007년 앨범 [Are You Listening?]을 내놓았고, 나머지 멤버들은 다른 프로젝트나 밴드의 멤버로 고국에서 조용히 활약했었다.
크랜베리스의 재결합 과정, 그리고 그들의 밴드의 본색을 회복한 최신 앨범 [Roses]
많은 이들이 어느덧 크랜베리스를 추억의 록 밴드로 여기게 되어가던 지난 2009년,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들에게 다시 한 자리에 뭉칠 기회가 제공됐다. 바로 돌로레스가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에서 명예 학위를 받는 날에 그녀를 축하해 주기 위해 멤버들과 함께 어쿠스틱 공연을 펼쳤던 것이다. 그 순간을 돌로레스는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가 함께 연주하던 그 순간, 우리는 결코 해체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크랜베리스로 연주하는 것에는 항상 뭔가 특별함이 있었어요. 마치 딱 맞는 신발을 신은 듯한 느낌이었죠.”
결국 밴드는 그 후 다시 뭉쳐 활동하기로 결정하고 일단 2010년부터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를 포함한 107회의 공연을 강행했다. 그 가운데는 밴드로서는 최초로 중국에서 연 공연도 있었다. 그리고 해체 기간 동안에도 서로의 아이디어를 교환했었던 돌로레스와 노엘은 투어 틈틈이 새로운 곡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미스(The Smith)와 모리시(Morrissey)에 이어 자신들의 데뷔작을 작업했던 프로듀서 스테픈 스트리트(Stephen Street)와 함께 새 앨범 「Roses」를 조용히 완성했다.
그들 스스로 스테픈과의 작업을 '금상첨와(icing on the cake)'라고 표현했을 만큼, 이번 새 앨범의 분위기는 데뷔작 만큼이나 상당히 정적이며 차분하다. 그래서 일단 이 앨범에서는 'Zombie'나 'Salvation'과 같이 공격적인 느낌을 추구하는 곡들은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Linger'나 'Ode to My Family', 'Just My Imagination'과 같은 그들의 텐션과 서정이 함께 공존했던 어쿠스틱이 강조된 사운드를 사랑했던 팬들이라면, 새 앨범 속에 있는 곡들과 쉽게 친해질 확률이 높다. 스트링과 강한 드럼의 백업 위에서 밴드 고유의 멜로디 라인이 잘 살아있는 첫 곡 'Conduct'부터 친숙함이 느껴질 테니까.
비트는 빠르고 경쾌하지만 어쿠스틱 록적 편곡으로 돌로레스에게 힘을 실어주는 'Tomorrow', 국내 팬들의 취향에 잘 맞을 슬로우 어쿠스틱 팝 트랙 'Raining In My Heart', 신시사이저의 영롱한 백그라운드 연주와 함께 돌로레스 특유의 다이나믹한 보컬의 힘을 느낄 수 있는 'Losing My Mind', 앨범 속에서 가장 로킹한 트랙이지만 크랜베리스의 1990년대식 낭만이 살아있는 'Schizophrenic Playboy', 스트링의 힘으로 차분하게 분위기를 눌러 밴드의 연주를 더 극적으로 살려주는 곡인 'Show Me', 정적이고 앰비언트적인 분위기로 흐르는 부분과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 드럼의 역동적 조합이 텐션을 올려주는 흐름이 교대로 이어지는 'Astral Protection' 등 앨범 전체적으로 단번에 그들의 음악임을 알 만한 개성들로 가득하다. 돌로레스의 목소리에만 푹 빠지고 싶은 이들은 'So Good'과 'Roses'와 같은 낭만이 가득한 어쿠스틱 발라드 트랙들에서 충분히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벌써 시대는 2010년대이고, 대중의 음악적 취향도 과거와는 꽤 달라진 상황에서 크랜베리스의 새 앨범이 예전 전성기 때와 마찬가지의 열광적 반응을 얻을 지 속단하긴 이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번 앨범을 통해 크랜베리스의 음악은 그간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자신들의 고유의 색채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아끼는 음악 팬들과 메이저 씬에도 좋은 록 밴드가 넘쳐났었던 1990년대 록의 시대를 추억하는 팬들에게 이 새 앨범은 충분히 사랑 받을 매력을 선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