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바람 1st EP [난봉꾼]
1. 밴드 소개
밴드 ‘시와 바람’의 탄생과 활동에 대한 역사적 고찰
- 주변의 증언을 중심으로
일단, 밴드 ‘시와 바람’은 정통 6,70년대 지방 캠퍼스 록 사운드를 지향하는 향토 록 밴드이다.
덧붙이자면………
음악적 경력이 전무함과 동시에 비운의 작가인 보컬 최민석은 어느 날 도어스의 짐 모리슨이 실상은 음악적 경력이 전무한 시인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에 문화적 충격을 받아, 자신도 알 수 없는 신령한 기운에 휩싸여 화산의 용암이 분출되듯 억눌린 창작욕을 불태워 곡을 쓰기 시작했다. 이를 딱하게 지켜보던 드러머 손준호 군과 기타리스트 김완형 군이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미비한 곡을 토대로 첫 합주를 시작했으니, 그 때는 서기 2009년 12월로 혹한의 추위와 유례없는 폭설로 전 국민의 활동이 위축되고, 국가적 경제상황이 경색되었던 시기였다. 허나 이들의 음악적 열정과 합주실을 핀란드식 습식 사우나로 만들어버린 혁명적 무브먼트는 후대에 의해 바흐의 탄생에 비견할 만한 일대 음악사적 분수령이 될 예정이다(고 멤버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최민석의 피 끓는 열정과 손준호, 김완형 군의 ‘음악적 자존심을 버린 제 살 깎기 식 헌신’이 무색할 만큼 이들은 밴드 결성과 동시에 좌절을 맛보게 되는데, 그 첫 좌절은 바로 정식 멤버였던 키보드 이창웅 군이 영입 1주일 만에 “도저히 트로트 분위기 나는 밴드에서 건반을 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별을 고했고, 베이스를 담당했던 A가 메이저 밴드에서만 있을 수 있다는 ‘음악적 견해의 차이’로 역시 이별을 고했다. 이로써 밴드 ‘시와 바람’은 이름처럼 작은 ‘바람’에도 쉽사리 꺼져버리는 성냥불 같은 처지에 처했다.
한편, 강 건너 흑석동에선 내면에 꿈틀거리는 B급 음악과 저급한 무대매너, 광포한 연주에 대한 열망을 감춘 채, 청순 소녀 취향의 ‘좋아서 하는 밴드’라는 팀에서 기타를 튕기던 손현 군이 정체 모를 기운에 휩싸여 새 밴드로의 활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하늘도 손현 군의 저속한 욕망에 감복했는지 경기도의 한 대학 행사에서 손준호 군을 만난 손현은 저급 밴드 ‘시와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감탄을 금치 못하니, 감격적인 첫 합주를 마쳤을 때 이미 그의 눈동자에선 주체할 수 없는 폭포수 같은 눈물이 흘러넘친 후였다. 여기서 잠깐 시간을 미래로 돌려 후대들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이는 흡사 1957년 7월 6일 리버풀의 울튼교회에서 서로의 연주를 보고 밴드를 결성한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의 만남에 비견될 만하다고 한다.
이로써, 아픔과 좌절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4인조 지방 캠퍼스 록 밴드 시와 바람은 2010년 8월 굴곡과 질곡(과 잡곡)의 역사를 뒤로 하고 정식 멤버를 구축하여 홍대를 기반으로 한,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와 지방 축제 행사장, 관광 나이트 회관을 주무대로 하여 활동하기로 도원결의에 비견할 만한 결심을 다지게 된다.
2. 시와 바람의 음악세계
시와 바람은 통속적 가사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곡 구성, 맥락 없는 기교로 6,70년대의 록음악을 재현하고자 하는 밴드이다. 음악적 경력이 없는 최민석의 영감을 탄탄한 연주 실력과 음악적 경험이 풍부한 손준호, 김완형, 손현 군이 합작하여 곡을 생산하고 표현하는 밴드 구조를 보고, 혹자는 ‘일단 구성은 도어스’라고 평하기도 했다.
3. 곡 소개
- 국정원 미스김
최민석은 “대기업 사원을 육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한국 교육 시스템에 똥침을 놓는 심정”으로 가사를 썼다고 했다. 맥락을 알 수 없는 발언에 멤버들이 반문하자, 최민석은 어릴 때부터 첩보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혼자서 은밀히 수행 해왔으나, 한국의 교육 시스템 상 첩보원이 되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그래서 가사에라도 ‘국정원’이나 ‘첩보요원’ 같은 단어를 삽입하길 희망했고, 그 탓에 뜬금없이 엔딩 부분에 ‘비밀의 첩보요원 킴’이 네 번이나 반복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또한 멜로디도 첩보 영화나 서부 영화 같은 느낌이 나도록 신경을 썼는데, 특히 도입부의 베이스 연주가 그러하다. 하지만 여심을 농락하는 김완형의 기타 솔로와 최민석의 한국전통가요식 창법이 어우러지며, 결과적으로는 트로트 같은 곡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멤버들의 총평이다.
- 오빤 알아
‘오빤 알아’는 ‘시와 바람’이라는 서정적인 밴드명과는 달리 가장 잔망스러운 곡이다. 가사는 류승완의 영화에나 나올법한 향속 B급 정서가 묻어나며, 멜로디는 홍대 인디씬에서도 가장 경망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곡에 멤버들은 성실한 자세로 연주에 임했으며, 의외로 서정적인 보컬이 담담하게 얹히며 의도치 않게 낭만적인 분위기가 도출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경망 로맨스’의 새 장을 개척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울러 한 박자 늦게 등장하는 코러스는 극장 문을 나서도 사라지지 않는 여운처럼, 청자의 귓가에 오랫동안 기생하는 느낌이다.
- 난봉꾼
타이틀 ‘난봉꾼’은 사이키델릭한 연주에 트로트 같은 멜로디, 아울러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반복적인 가사가 더해져 기이한 매력을 자아내는 곡이다. 얼핏 들으면 트로트 같으나 계속 들을수록 사이키델릭의 매력이 배가되는 마치 홍차 같은 곡이며, 이에 대해 혹자는 “시와 바람의 ‘난봉꾼’을 통해 ‘사이키델릭 트로트’라는 미증유의 장르가 개척되었다”고 평했다.
- 빗속에 내리는 당신
이 곡의 전주는 마치 소림사 영화의 인트로 화면을 보는 듯 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실제로 최민석은 주성치의 ‘쿵푸 허슬’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멤버들의 힘찬 기합소리로 시작되는 전주에 달리 지질하고 별 볼일 없는 화자의 가사는 기이하고 이율배반적인 묘미를 선사한다. 아울러 간주에 등장하는 김완형의 기타 솔로는 70년대의 흑인 펑크음악을 연상시켜, 듣다보면 불현듯 아프로 파마를 한 흑인이 허난성에서 무술 연습을 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 아임 낫 어 김치(I'm not a kim-chi)
(아직도 믿을 수 없지만) 이 곡은 시와 바람이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쓴 곡이라 한다. 특히 멤버들은 서구권에만 편중된 록음악의 불평등한 시장상황을 개선해보고자 합의했고, 그 결과 보컬 최민석은 의도적으로 ‘중동․아프리카 식’영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가사가 영어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이게 영어였단 말인가!” 하는 허를 찌르는 이태원 식의 발음이 압권이다. 게다가 곡 전반에 흐르는 펑키한 느낌에 간드러지게 삽입된 키보드는 이 밴드가 지향하는 시대가 6․70년대임을 명백히 말해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