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H.O.T’, ‘젝스키스’ 등을 앞세워 시작된 본격적인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며 등장한 사이버가수 '아담'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외모와 성격, 취미 등 여성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조합으로 대중을 사로잡으려던 시도는 허무하게 실패하고 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상의 존재가 실제 인간을 닮아갈수록 오히려 거부감을 키운다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이론의 좋은 예로 남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조악한 CG로 보일 뿐이지만 98년 당시엔 단연 실제 같은 외모가 화제였으며, 시력과 좋아하는 날씨까지 적혀있던 프로필은 과하게 디테일했다) 그런데 이런 시행착오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담이 등장한 1998년 영국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진 가상밴드 '고릴라즈(Gorillaz)'가 기획되고 있었으며, 2001년 첫 앨범 발표 후 현재까지 폭발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가상의 밴드 ‘고릴라즈’의 멤버들은 카툰 캐릭터로 대중은 감정이입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 없이 가상의 밴드를 있는 그대로 가볍게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2011년 12월 31일 '카운트다운 서울 2012'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바바빌리지(VAVA Village)'는 ‘고릴라즈’와 성격이 비슷하지만 조금 더 나아간다. 대중은 바바빌리지의 캐릭터와 이야기 그리고 음악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차이점은 존재한다. 고릴라즈 캐릭터들이 음악을 완성하기 위한 장치였다면 ‘바바빌리지’의 음악은 캐릭터와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한 장치인 듯하다. ‘고릴라즈’의 멤버들은 결국 전형의 밴드 구성원이지만, ‘바바빌리지’는 말 그대로 이상한 마을의 구성원 그 자체인 것에서 차이는 쉽게 드러난다. 지구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이상한 마을 ‘바바빌리지’의 구성원들이 알 수 없는 괴한들의 침입으로 감금되어 있다가 첫 공연을 위해 현실세계로 탈출해 데뷔한다는 다소 황당한 그들의 첫 에피소드에 귀여운 재미, 그리고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음악이다.
힙합의 영향을 받은 일렉트로 댄스 뮤직(Electro Dance Music)인 동명의 첫 싱글 “바바빌리지”는 몇 장의 카툰과 짧은 설정으론 부족한 이야기의 여백을 상상력을 발휘해 채워나갈 수 있도록 돕는데 충분하다. ‘바바빌리지’의 데뷔를 알리는 약간의 샤우트-아웃(Shout-out) 외엔 별도의 랩이나 보컬을 담지 않아 자연스럽게 첫 에피소드의 적극적인 배경음악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일반의 애니메이션과 차별화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감각있는 프로듀서 ‘시렌(Shiren)’이 완성도 있게 주조한 신나는 댄스 뮤직이 주는 흥겨움은 ‘바바빌리지’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준점이 될 듯한데, 그래서 그의 음악이 ‘바바빌리지’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조금 더 함께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이것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다양한 장르 아티스트의 음악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는 실험의 장으로 견고하게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기 때문에 덧붙이는 말이다. 무엇보다 알 수 없는 세력에 의해 이유도 모른 채 억압되었다가 탈출한다는 이야기에 흥겨운 음악이 함께 해서인지, 절로 응원을 하게 만드는 매력이 돋보인다. 애정을 가지고 다양한 형식의 문화 컨텐츠로 재생산될 ‘바바빌리지’의 시작을 지켜보는 것도 큰 재미일 듯 하다. 어쨌거나 난 이미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하나 골랐으니, 흥미롭게 지켜볼 것이다. 느낌이 좋다.
리드머(Rhythmer.net) 남성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