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매혹적인 마스터피스 디지털 리마스터링 재발매!
All That Masterpiece Series (올 댓 마스터피스 시리즈)
올 댓 마스터피스, 주찬권(1집)
* 디지털 리마스터링 / 초호화 가사집 포함
최근 가수들의 가창력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감동을 선사하는 진짜 가수에 대한 관심 증폭은 대중음악을 ‘예술적’ 경지로 견인하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조성하고 있다. 그 결과, 클래식 공연장에서나 볼 수 있던 연주 후 기립박수를 보내는 관객석의 풍경은 대중음악 콘서트홀에서도 더 이상 놀랍거나 낮선 풍경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과거 대중음악인을 ‘딴따라’라 비하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가히 혁명적인 인식의 변화다.
어느 시대나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며 모래알처럼 무수한 히트곡을 양산한 엔터테이너는 넘쳐난다. 하지만 대중은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그들의 화려한 무대에 열광하면서도 정작 예술가의 지위를 부여하는 데는 인색하다. 히트곡이란 그저 소모품이란 이야기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일반대중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적인 노래나 진지하고 참신한 실험성과 예술성을 담은 창작앨범에는 호의적이질 않다. 거의 대부분은 익숙한 과거의 명곡이나 시류와 유행에 민감한 트렌드 음악에 친숙함을 느낀다. 노래가 조금이라도 어둡고 진지하면 머리 아프다고 곧바로 외면하는 대중도 적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음악 장르를 넘어 모든 예술분야의 창작자들은 영원히 풀 수 없는 난제에 직면한다.
내용과 형식 즉 작품성과 대중성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 둘은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기차의 레일처럼 마주보고 내달리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작품성을 추구하면 대중성이 없고 대중성을 추구하면 작품성이 떨어지는 악 순환 말이다. 상업성에 중심을 둔 엔터테이너는 늘 넘쳐나지만 예술적 향기가 넘치는 실험적이고 탁월한 창작앨범을 발표하는 작가주의 뮤지션들도 제법 된다. 예술성을 지향하는 뮤지션들은 마니아용 음악으로 치부되어 음반이 팔리지 않기에 폭넓은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는 치명적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조용필과 신중현은 음악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낸 성공한 대중문화예술인의 상징일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예술가’의 지위에 걸 맞는 뮤지션은 몇 명이나 될까?
한대수, 조동진도 예술가로 평가받을 자격이 충분하지만 최근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 <신촌블루스>의 엄인호와 함께 프로젝트 밴드 <슈퍼세션>을 결성해 아이돌이 지배하는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80년대의 전설적인 록밴드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도 거론할 가치가 충분한 아티스트이다. 최고의 음악성을 담보한 명반으로 공증된 <들국화> 1집에 참여했던 원년 멤버인 그는 데뷔 이래 지금까지 진지한 음악적 태도를 잃지 않고 외길 음악인생을 걸어온 대중음악 예술가의 전형이다. 벌써 5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넘치는 그의 머리와 가슴 속에는 온통 음악으로 꽉 차 있다.
묵직한 드럼 비트와 선 굵은 남성적 이미지가 매력적인 주찬권은 한국 록밴드의 드러머 계보에서 각별하고 특이한 존재다. 최고의 연주력은 기본이고 창작, 노래, 프로듀싱, 편곡능력까지 보유한 멀티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어느 밴드에서나 드러머는 가장 뒤 쪽에 위치할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대부분 리듬을 담당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노래하는 가수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쳐지는 왜곡된 대중음악계의 환경에서 무대의 뒤쪽에서 연주하는 밴드의 드러머가 대중적 조명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넘치는 음악성을 담보한 주찬권이 <들국화>의 리드보컬 전인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적 조명을 받지 못한 이유도 그 지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주찬권을 거론할 때 <들국화>의 의미는 각별하다. 사회적 물의를 빚기는 했지만 전인권은 카리스마 넘치는 비주얼과 가창력으로 막강한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한 뮤지션이다. 최성원 또한 들국화 해체 이후 솔로로 독립해 담백한 포크 향기가 근사한 ‘제주도의 푸른 밤’등 차트 정상에 오른 공전의 히트곡들을 발표하는 대중적 성과를 올렸다. 이들에 비해 대중적 지명도에서는 약하지만 록밴드 <들국화>에서 차지하는 주찬권의 위치는 확고하다. 포크성향이 강했던 밴드에 묵직한 정통 록 사운드로 음악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었던 사실상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화려했던 <들국화> 시절은 영광의 기록인 동시에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다. <들국화> 해체 후 솔로로 독립한 그는 지금까지 5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중은 여전히 그를 ‘들국화의 주찬권’으로만 기억하려 든다. 이는 탁월한 연주력과 음악성을 구현한 빛나는 솔로 앨범을 발표했지만 대중이 기억할 공전의 히트곡이 없다는 사실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의 솔로 음반들은 일부 록 마니아들의 찬사를 이끌어낸 탁월한 록 음반이지만 대중적으로는 큰 조명을 받지 못하고 대부분 사장된 비운의 앨범이기도 하다. 더구나 1989년에 발표된 솔로 1집, 1990년의 솔로 2집은 속절없는 세월의 이끼에 가려 이제는 듣기조차 힘들어진 노래들이 되었다.
그렇다면 변변한 빅 히트곡 하나 없는 그의 솔로 데뷔 초기에 발표한 1, 2집이 무수한 히트곡을 양산한 80-90년대 인기가수들의 히트 앨범을 제치고 명반 컬렉션 <All That Masterpiece Series>로 재 발매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2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세련된 연주와 중독성 강한 주찬권의 은근한 보컬이 안겨주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이제 주찬권을 <들국화>가 아닌 그의 음악으로만 평가해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아이돌의 트렌드 음악이 난무하는 요즘, 재발매된 주찬권의 솔로 데뷔시절 음악들은 그 시절 우리 대중음악계에도 진짜 프로 뮤지션이 존재했음을 확인시켜줄 것이라 믿기에 더욱 반갑고 든든하다.
여기 복원된 그의 솔로 1, 2집은 왜 그를 우리 시대의 ‘거장’으로 대접하는지에 대한 또렷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실 록밴드 <들국화> 시절 그의 연주력은 최고로 평가받았지만 가창력으로 어필했던 뮤지션은 아니었기에 그가 솔로앨범을 발표했을 때 일부 평론가와 팬들 사이에는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반전의 기쁨을 안겼다. 모든 곡을 직접 노래하고 작사, 작곡, 편곡에다 파워풀한 드럼 연주는 기본이고 기타 연주까지 해낸 그의 가늠하기 힘든 멀티 플레이어 재능은 진정 눈이 부셨다. 사실 1988년에 발표된 그의 솔로 1집은 폭발적인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진 못했지만 ‘한국의 에릭 클랩튼’이란 평가를 이끌어낸 수작이다. 탄탄한 연주력으로 채색되어 듣는 즐거움이 무한적인 그의 1집은 미국 남부의 신나고 경쾌한 서든 록, 브리티쉬 록, 재즈 록 등이 절묘하게 화학 작용하는 품격 높은 사운드를 구현했다. 모든 트랙들은 드러머 주찬권이 아닌 보컬리스트 주찬권 그리고 기타리스트 주찬권을 재발견시켜주는 훌륭한 연주와 보컬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1집은 총 10곡의 창작곡이 수록되었다. 타이틀격인 첫 트랙 <다시 만날 때까지>는 누구에게나 쉽고 부담 없이 다가갈 편안한 느낌의 발라드 록 버전이다. 리듬감이 탁월한 서든 록 <기다려줘요> 또한 주찬권의 작렬하는 드럼 비트가 절로 몸을 흔들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최고의 여성재즈보컬 나윤선이나 말로에게서나 경험할 스캣 애드리브를 그가 23년 전에 이미 시도했다는 점이다. 남자가수의 스캣 또한 아름다운 악기가 될 수 있음을 그는 웅변하고 있다. <왠일로>도 꼭 한번 들어보시길 강력추천하고 싶은 근사한 트랙이다. 우선 허성욱의 풍성한 키보드 사운드가 시종 청자를 마음을 사로잡고 기타리스트 주찬권의 무한 가능성이 전해지는 내공 깊고 맛깔난 기타 리프에다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가창력은 가수 주찬권의 존재가치를 이 한 곡으로 입증하고 있다. <나를 보면>도 전작의 감흥을 이어주는 탁월한 연주가 압권이다. 에릭 클랩튼의 보컬 질감을 연상시키는 드럼 비트가 쭉 빠진 <소리없이>는 일렉트릭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 2대가 펼치는 담백한 앙상블을 들려준다. 역시나 스캣 보컬이 등장하는 <밤이 좋아> 그리고 <괜찮아요>, <저 낣은 바다로> 또한 이 음반의 튼튼한 뼈대 역할을 하는 노래들이다. 또 하나의 명곡 <모습들>도 빼놓을 수 없다. 허성욱의 날라 다니듯 경쾌한 키보드와 서정적 질감이 뿜어 나오는 주찬권의 기타 리프 그리고 더없이 강력한 드럼 비트와 시원하게 내지르는 보컬은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1집의 음악적 성과에 힘입어 2년 뒤인 1990년 기대감 속에 제작된 2집은 실제로 음반 발매초기에 도매상에서 품절사태가 빚어졌던 히트 앨범이다. 더욱 진보된 음악성과 환상적인 사운드는 무려 14명에 달하는 당대 정상급 세션맨들과 조동익의 편곡작업 참여로 가능했다. 세션맨들이 면모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기타만 해도 주찬권과 더불어 최구희, 손진태, 신윤철, 조준형, 김의석 등 6명이 참여했고 피아노와 신디사이저도 김효국, 한송연, 김현철 등 3명, 베이스 강상영, 드럼과 퍼커션에 주찬권과 배수연 그리고 코러스도 들국화 멤버 최성원, 장필순, 김현철, 김용덕 등 4명이 참여했다.
주찬권은 노래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힘주어 주장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양한 리듬 패턴과 사운드의 하모니를 중시하는 연주의 구성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은유적인 가사작법이 빛나는 2집은 주찬권이 왜 아티스트로 대접받아야 되는지를 입증하는 명반이다. 앨범의 화두는 ‘사랑’이다. 첫 트랙 <새 한 마리>의 탄탄한 멜로디와 풍성한 사운드는 애절한 주찬권의 보컬과 합체되며 아련한 추억으로 인도하는 애절한 감성이 범상치 않은 명곡이다. 리듬감 있는 키보드와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브리티쉬 록 <나 이제> 또한 감칠맛이 나는 여성 코러스와의 앙상블이 근사하고 <별이 빛나고> 또한 탁월한 리듬감을 뽐낸다. 이어지는 이 앨범 최고의 명곡 <너에게>는 연주, 보컬, 멜로디, 가사 어느 것 하나 빠트릴 게 없는 매력덩어리다. 서정적 피아노로 시작하는 인트로는 죠지 윈스턴의 그것에 비견할 만하고 심플한 편곡은 윌리엄 에커맨의 뉴 에이지 향내까지 느끼게 한다.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세계적인 프로그레시브 연주자 기타로의 연주곡 <실크로드>를 연상시키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정수를 들려준 <길>과 연결곡인 연주곡 <고향을 찾아서>다. 마치 청자에게 휴식을 안겨주듯 다정하게 이야기를 걸어오는 주찬권은 한층 무르익은 가창력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주찬권식 사랑노래인 <그대 생각>과 <우리 서로>는 누군가가 그리운 날 들으면 제격인 노래다. <내 맘에 불을>은 은근히 댄스본능을 자극시키는 강력하고 경쾌한 리듬비트가 인상적이다.
주찬권은 록을 위해 태어난 뮤지션이다. 또래들이 한창 동요를 부를 나이인 5살 무렵부터 10살 터울의 형에게서 기타를 배웠고 초등학교 4학년 때 밴드결성을 준비하던 형이 ‘드럼 칠 사람이 없다’고 해서 드럼 스틱을 잡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한 눈을 팔지 않고 묵묵하게 음악인생을 걸어오고 있다. 그의 음악 내공을 알아보려면 1973년 미8군 활동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74년 《뉴스 보이스》, 1978년 《믿은 소망 사랑》, 1983년 《신중현과 세나그네》, 1985년 《들국화》에 이르는 그의 음악엔 언제나 록 음악이 함께했다. 하지만 1987년 들국화가 해체 후 그는 연속적인 불운에 휘청거리기도 했다. 1996년 14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이혼과 이듬해인 1997년 커다란 상심을 안겨준 동료 허성욱의 교통사고가 그것이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꺼질 질 모르는 그의 장인 정신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흑백사진 속 20대의 <비틀스>보다 70에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무대에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롤링스톤스>가 더 아름답다.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 들려줄 음악이 더 많은 로커 주찬권 또한 지금이 더 근사하고 멋지다. 모처럼 복원된 그의 솔로 1, 2집에 담긴 매력적인 음악이 그의 음악을 접하지 못한 대중에겐 오랫동안 친구가 되길 바란다. - 대중음악평론가 최 규 성(oopldh@naver.com)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