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비둘기연합 (National Pigeon Unity) [Root]
전국 비둘기 연합. 2007년 펑크밴드로 처음 홍대씬에 발을 내딛은 이래로,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200회가 넘는 꾸준하다 못해 지독한 라이브를 소화하며 이미 홍대씬에서는 인지도 있는 밴드로 자리매김한 전국비둘기연합(National Pigeon Unity, 전비연)은 그들의 시작점인 팝 펑크에서부터 EMO, 모던락, 하드코어, 얼터너티브, 그런지, 포스트 락에 이르는 다양한 유전자들을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엮어내는 무규칙, 전방위 락 아티스트들이다. 2010년 봄 첫 번째 정규앨범 [Empathy]를 발매하고 그 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발의 락앤롤 슈퍼스타에 선정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이들은 3인조의 라인업을 2인조의 실험적 라인업으로 재편하고 보다 성숙하고 개성 있는 사운드로 가득 찬 두 번째 정규앨범 [ROOT]를 발표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두 번째 정규앨범 [ROOT]. 전비연은 이제껏 상당히 미묘한 지점에 머물고 있었다. 그 미묘함은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그들이 경계의 음악을 구사했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천진성과 어두움 사이. 대중성과 마이너함 사이. 그것들이 전비연이 리스너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들에게 열광하는 리스너들 바깥쪽의 사람들에게는 부정이나 불호(不好)의 지점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과는 관계없이 그들은 계속해서 라이브를 해왔고, 앨범작업을 해왔지만 이번 앨범의 곡들을 들어보면 드디어 어떠한 결단을 내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경계에서 벗어나 어떠한 정확한 지점으로의 선택을 예상했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실망을 안겨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한 결단은 바로 경계의 음악에 대한 정당성을 찾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들의 정체성은 정체성을 교란시키는 방법으로 존재한다. 확신 하건데 그 방법으로 존재하는 이번 앨범은 그들의 고정된 리스너 바깥의 사람들마저 빨아들일 뿌리가 될 것이다.
수록된 곡들을 살펴보면 더블타이틀곡인 “Root”와 “Kathera”가 이번 앨범의 음악적 색깔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별한 기교 없이 아이같이 지르는 김동훈의 보컬과 연주와 함께 곡에 존재감을 더욱 불어넣어주는 박영목의 스크리밍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러나 예전의 천진난만하고 장난스럽던 가사와 밝은 분위기는 사라지고 가끔씩 내비쳤던 어두움, 비판적, 냉담함, 체념 등 마이너스의 감성이 짙다. 또한 이번 앨범을 통해 2인조로 새로운 변신을 꾀한 그들은 자신들만의 음악적 근거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기타와 드럼이 남았고, 노래할 수 있는 목청이 남았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할 수 있는 음악은 무엇이 있는지, 또 그 음악들이 아름답기 위해서(대중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가 배제된 뉘앙스는 아니다.)어떤 음악적 형식을 가져야 할지를 고민하고, 그 고민 자체가 어떤 대답이 되도록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전의 앨범에서 찾아볼 수 없던 서정성이 느껴지는 “NF”같은 곡은 형식에 관한 집요한 질문 가운데 나온 하나의 결과물인 동시에 전비연이 설 수 있는 또다른 경계를 제시해주고 있다. 이번 앨범이 그들뿐만 아니라 리스너, 인디씬에 중요한 기점이 되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그들은 2인조로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뿌리내린 경계의 노래는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그들의 전방 위라고 밖에 표현할 길 없는 뿌리는 얼마나 더 멀리 갈 것인가? 그것에 대한 답은 뿌리에 있다. 감자처럼 뿌리가 열매가 될 수도 있다. 줄기에서 가지에서 열매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뿌리는 무엇인가? 뿌리는 퍼져나간다. 뿌리는 움켜쥔다. 뿌리는 강하다. 뿌리는 징그럽다. 뿌리는 춥다. 뿌리는 멀다. 뿌리는 빨아들인다. 뿌리는. 쓰다. 혹은 달콤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