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향가 <처용가>와 고구려 유리태왕의 <황조가> 대중가요로 다시 탄생했다
현대사회에서 대중은 문화를 창출하는 핵심적 집단으로 이들의 기호에 따라 유행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따라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예술 갈래인 대중음악도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대중의 취향에 맞춰 음반을 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대중음악은 지나치게 10대 취향에 편중되는 문제점을 야기하게 되었다. 다양함을 바탕으로 해야 할 대중문화의 모양새가 부실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중음악의 편식현상은 대중들의 정서함양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향가를 대중가요로 부르려고 하는 이유는 여기서 출발한다.
19세기 초까지 우리민족이 즐기던 대중음악은 민요를 비롯해 판소리, 잡가, 구비동요 등이 있었다. 전통에 뿌리를 둔 이 노래들이 시대의 상황에 따라 변화와 발전을 모색할 즈음,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해 전통의 맥은 끊어지고 말았다. 대신 그 자리에 왜색 트로트가 파고들었다. 트로트는 눈물과 애수의 정서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민족의 정서를 왜곡했다. 해방 후에는 우리나라가 미군정의 영향 아래 놓이면서 팝이 도입되었고 우리 대중음악은 다시 서양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8.15 광복으로 정치적 주권은 찾았지만 문화적 주권은 잃어버린 절름발이 신세가 된 것이다.
단절의 역사를 극복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가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내 부모를 찾는 것이며 ‘나’라는 존재의 확인 작업이다. 향가의 대중가요 화는 나의 모습을 바로 보기 위한 방법이다. 이 일은 결코 우리 정서의 대안이 될 수 없는 트로트와 팝의 사슬을 끊고 단절된 전통가요의 맥을 잇는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렇기에 향가의 가요화 작업은 문화독립운동이다.
지금까지 향가는 학자들의 연구실에서나 다루는 학문의 영역으로 여겨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까닭은 우리의 무관심과, 무관심을 유발케 한 난해한 번역 그리고 생소한 고어 때문이라 생각된다. 향가의 가요화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가요로 들려지는 향가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쉽게 번역한 노랫말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 까다롭고 학술적이라는 향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석해 줄 것이다. 또한 당시 신라어를 가능한 한 근접하게 복원하여 노래하기에 조상들이 쓰던 옛말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쁨을 제공할 것이다.
‘요즘 우리 노래는 국적이 없다’는 말을 종종 한다. 문화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에 하는 당연한 걱정일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 토양이 척박한 우리에게도 당당하게 내 놓을 것이 있다. 헤어지는 연인에게 꽃을 뿌려주고 절대로 울지 않겠다는 <진달래꽃>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민족은 우리뿐이다. 천하의 마이클 잭슨이라도 판소리를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잘 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민족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향가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문화상품이다. 따라서 향가의 대중가요화는 시대적 필연이다.
이번에 내놓은 <처용가>는 신라시대의 향가를 그대로 부르는 것은 아니다. 현대적 음률의 대중가요에 1절의 가사는 신라어로, 2절은 현대어법에 맞는 가사를 붙였다. 1절은
김완진 서울대 교수께서 각고의 노력으로 해독한 신라어다. 2절은
김완진 교수의 해독을 필자가 노랫말에 맞게 현대역을 했다. 다시 말하면 신라 향가인 <처용가>를 대중가요로 신라어와 현대어로 부르는 것이다.
고구려 유리태왕의 <황조가>는 한역가이다. 즉 유리태왕이 우리말로 느낀 것을 한자를 빌어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우리말의 옛 모습을 찾기가 더욱 어렵다. 대중가요의 가사로 만들기 위해서 부득이 한자로 쓰인 <황조가>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해야 했다. 이 작품은 노랫말로 쓰기에는 너무 짧다. 그래서 필자가 작품의 분위기에 맞게 약간의 배경 설명을 삽입했다. 이 노래 역시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대중가요에 원문 <황조가>를 우리말로 풀어서 부르는 것이다.
향가라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국악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 노래들은 국악의 리듬을 사용하지 않았다. 전통은 재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전적 계승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만의 개성 있는 음악, 노랫말, 악기는 다시 숙제로 남기면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