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그날 밤을 새노라니 어둔 눈은 더욱 침침허여지고, 어린 아해는 점점 기진헐 제, 동방이 희번히 밝어오니 우물가 물 긷는 소리가 들리거늘, 심봉사 좋아라고, "옳지. 인제야 날이 밝었구나."
(중중모리) 우물가 두레박 소리 얼른 듣고 나설 제, 한 품에 아이 안고, 한 손에 지팽이 걷더짚고, 더듬더듬더듬 더듬 더듬더듬이 나간다. 우물가 찾어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뉘신 줄은 모르오나 초칠 안에 어미를 잃고 젖을 주려 죽게 되니, 이 애 젖 쪼끔 멕여 주오." 우물가 오신 부인 철석인들 아니주며, 도척인들 아니 주랴. 젖을 많이 먹여주며, "여보시오, 봉사님." "예." "이 집에도 아이가 있고, 저 집에도 아이가 있으니 어려이 생각 말고, 내일도 안고 오시고, 모레도 안고 오시면, 내 자식 못 먹인들 차마 그 애를 굶기리까?" 심봉사 좋아라, "허허, 감사허오. 수복강녕 허옵소서." 젖을 얻어 먹이랴 이 집 저 집을 다닐 적으, 그 때여 심봉사가 젖동냥에 이골이 나서, 삼베 질쌈 허노라 '히히 하하' 웃음소리 얼른 듣고 들어가, "이 애 젖 좀 멕여주오." 오뉴월 뙤약볕에 김매고 쉬는 부인 더듬더듬 찾아가,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백석청탄 시냇물에 빨래허는 부인들께 더듬더듬 찾어가, "여보시오, 부인님네. 댁에 귀헌 아이 먹고 남은 젖 있거들랑, 이 애 젖 쪼끔 멕여주오." 젖 없는 부인들은 돈돈씩 채워주고, 돈 없는 부인들은 쌀되씩 떠주며 맘쌀이라 허라허니, 심봉사 좋아라, "허허 감사허오. 은혜 백골난방이오." 젖을 많이 먹여 안고 집으로 돌아올 적, 어덕 밑에 쭈구려 앉어 아기를 어른다. "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어허 내 딸 배불렀다! 흐흐, 아, 인자 배가 뺑뺑허구나. 아, 거 날마다 이렇게 배가 불렀으면 오직이나 좋겠느냐, 음! 둥둥 내 딸이야. 이 덕이 뉘 덕이냐. 동네 부인의 덕이라. 어려서 고생을 허면 부귀다남을 헌다드라. 너도 어서어서 자라나, 너희 모친 본을 받어 현철허고 얌전허여 아비 귀염을 네 보여라. 둥둥 두우웅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자진모리) "둥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내 새끼지야, 내 새끼. 어허 둥둥 내 딸. 눈 비 산천에 꽃봉이, 새벽바람에 연초록, 얼음 궁기 수달이로고나. 둥둥둥 내 딸. 댕기 끝에는 준주실, 옷고름에는 밀화불수, 어덕 밑에 귀냄이로구나. 슬슬 기어라, 어둥둥 내 딸. 쥐얌쥐얌 잘깡잘깡 엄마 아빠 도리도리 어허 둥둥 내 딸. 아나, 올룰룰루루루. 아, 이것이 발써 나를 보고 빵긋빵긋 웃네그려. 허이, 참. 아, 그 웃는 입모습 영락없이 늬 어머니다. 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서울 가, 서울 가, 밤 한 줌 사다가 살강 밑에 넣어놨더니마는, 머리 깜은 새양쥐가 들랑달랑 다 까먹고 밤 하나 남은 것을, 찬지름에 달달 볶아 너허고 나허고 둘이 먹자. 어허 둥둥 내 딸. 둥둥 두웅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아니리) 아해 안고 돌아와 포단 덮어 뉘어놓고, 아해 자는 틈을 타서 동냥차로 나가는디,
(중중모리) 삼베 전대 두 동 지어 왼 어깨 드러메고 동냥차로 나간다. 한 편에는 쌀을 받고, 한 편에는 나락 동냥. 어린 아해 맘죽차로 감을 사고 홍합 사, 왼 어깨 드러메고 허유허유 돌아온다. 그 때여 심청이는 하늘의 도움이라 잔병 없이 자러날 제, 세월이 여류허여 육칠 세가 되어가니, 부친의 지팽이 잡고 앞길을 인도허기, 모친의 기제사와 부친의 봉양사를 의법이 허여가니, 무정세월이 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