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331, K570, 환상곡 K397, 아다지오 K540 ★★★★★
연주: 톰 베힌(포르테피아노)
모차르트 생가에 있던 안톤 발터 포르테피아노가 작곡가 사후 개조된 점에 착안하여 생전에 사용되었던 옛날 액션인 슈토스메하니크를 사용한 악기로 연주한 세계 최초 레코딩. 보다 쳄발로스럽고 음색이 유려한 이 악기 연주 가운데 특히 ‘터키 행진곡’에는 두꺼운 종이를 현 위에 얹고 발을 구르면서 특수음향을 내기도 해서 이채롭다. 한글 해설지를 음반 뒷면에 첨부하여 모차르트 생전과 그 이후의 포르테피아노가 어떻게 달라졌는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겯들여놓았다.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
정리: 전 상 헌
잘츠부르크에 있는 모차르트의 생가에는 모차르트가 실제로 소유했던 포르테피아노가 전시되어 있다. 위대한 작곡가의 손때가 묻어 있는 이 귀중한 유산은, 그동안 모차르트뿐만 아니라, 18세기 후반의 피아노 작품에 대한 역사적인 연주 관습을 연구하고 옛 건반악기의 가능성을 개척하고자 했던 이들에게 하나의 상징적인 존재나 다름이 없었는데, 직접적으로 이 악기를 연주하지는 못 하더라도, 이 악기를 그대로 복제한 악기나, 또는 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악기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작품을 연주하는 데 있어서 '정격 악기'로 간주되었다.
이 포르테피아노는 프레임과 브레이스들이 모두 목재로 만들어져 있으며 다섯 개의 끝이 뾰족한 다리를 가지고 있다. 건반의 색깔은 오늘날의 피아노와는 반대로 내추럴 건반은 검은색이고 샵 건반은 흰색이며, 음역은 FF부터 f'''까지 5옥타브로서 건반의 수는 모두 61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머 액션이 레트로 프렐메하니크(retro Prellmechanik) 방식에 의한 전형적인 빈식 액션(Viennese action)이기에, 건반이 매우 가볍고 하강 깊이가 얕을 뿐만 아니라, 연주자의 터치에 매우 민첩하게 반응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해머의 크기도 오늘날의 피아노보다 더 작고 보다 단단한 소재인 가죽(현대 피아노에서는 펠트 해머)으로 덮여 있으며, 해머의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기 때문에 현을 타격하는 지점도 너트에 좀 더 가까워서 보다 밝고 배음이 풍부한 음색을 들려주고 타현 후에 소리가 보다 빨리 감쇄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두말할 필요가 없이 바로 이러한 모든 특징들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작품을 연주하는 데 있어서 이상적인 조건이라는 것이 많은 포르테피아노 연주자들이 한결 같이 주장하고 있는 바이다. 또한 단면이 삼각형 모양인 체크 레일이 있어서 현을 타격한 후에 아래로 떨어지는 해머를 안전하게 받아 주어 되튐 현상을 방지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는데(오늘날의 피아노에 있는 백체크와 같은 기능이다), 이것은 빈의 제작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제작자 요한 안드레아스 슈타인의 포르테피아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리고 건반 아래에는 무릎으로 조작하는 두 개의 레버 ― 오른쪽 레버를 무릎으로 들어 올리면 현대의 그랜드 피아노에서 댐퍼 페달(오른쪽 페달)을 밟았을 때처럼 모든 댐퍼를 현에서 떨어지게 하며, 왼쪽 레버를 들어 올리면 약간 특이하게도 저음역의 댐퍼들만 현에서 떨어지게 한다 ― 가 있으며, 건반 바로 위의 중앙에는 모더레이터(moderator) ― 현과 해머 사이에 얇은 천을 삽입하여 음량이 더 작고 보다 부드러운 음색의 톤을 만들어 내는 장치― 를 작동시키는 핸드스톱이 있다.
모차르트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이 포르테피아노를 구입하였는가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 볼 때 그가 1781년에 빈으로 이주한 이후로 얼마 안 되어 ― 대략 1782년경에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모차르트가 신품을 구입한 것이라면 악기도 대략 이때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그리고 1785년 2월과 4월 사이에 빈에 있는 아들을 방문한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1785년 3월 12일에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악기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에 대한 최초의 증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편지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무엇보다도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 아래에는 길이가 좀 더 길고 보다 무거우며 오르간처럼 발로 연주해야 하는 페달이 부착된 또 하나의 포르테피아노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즉,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는 소위 '페달 포르테피아노'라는 특별한 악기였는데, 1785년 3월 10일에 있었던 한 연주회에 대한 광고 전단지를 통해서도 모차르트가 이와 같은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D단조 협주곡(K.466)에도 페달 건반의 사용을 시사하는 부분이 존재하며, 모차르트 사후에 작성된 그의 재산목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페달 건반의 존재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이 페달 건반은 모차르트 사후에 종적을 감추어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어쨌든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포르테피아노는 콘스탄체가 계속 보관하고 있다가, 1810년부터는 밀라노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모차르트의 아들 카를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콘스탄체는 1810년 1월 17일에 아들 카를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네 아버지의 피아노를] 내가 관리를 잘 하기도 했고, 이 악기를 제공한 발터(Walter von dem es ist)가 친절하게도 새로 가죽을 입히고 다시 한 번 수리를 해 주었기 때문에, 상태가 예전처럼 양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우리는 이 편지로부터 모차르트에게 포르테피아노를 제공한 사람이 안톤 발터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여기서 'von dem es ist'(from whom it is)라는 말은 안톤 발터가 이 악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은데, 실제로 발터가 만든 것이 분명한 다른 포르테피아노들과 비교해 볼 때 모차르트의 악기를 만든 제작자가 안톤 발터임은 거의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으나, 악기 자체에는 악기 제작자를 알려 주는 이름판이 붙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프랑스 대혁명 이전에는 악기 제작자들에게 중요한 고객은 유명한 음악가들이 아니라 귀족들이었기 때문에, 발터의 악기를 모차르트가 사용한다는 사실이 발터 자신에게는 어쩌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모차르트가 남겨 놓은 이 보물을 콘스탄체에게서 받은 아들 카를은 1856년에 이 위대한 작곡가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잘츠부르크에 있는 모차르테움에 기증하였고, 20세기에 이르러 약간의 보수 과정을 거친 후에 지금은 모차르트의 생가에 전시되어 있다.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연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에 벨기에 출신의 포르테피아노 연주자 톰 베힌이 내놓은 이 레코딩은, 지금으로부터 10 여년 전에 미하엘 라트함(Michael Latcham)을 비롯하여 알폰스 후버(Alfons Huber)와 루돌프 호프너(Rudolf Hopfner)가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와 안톤 발터의 다른 포르테피아노들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비교한 끝에 알아낸 충격적인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는 안톤 발터가 이 악기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모습과 현저하게 다른 상태로 개조가 된 적이 있으며, 개조를 한 사람도 다름 아닌 발터 자신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개조를 한 시점이 모차르트 사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개조된 사항 중에서 중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1) 댐퍼 시스템의 개조 : 최초에는 무릎 레버가 없었다!
현재의 무릎 레버는 악기 양쪽 끝에 있는 또 다른 두 개의 레버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 또 다른 레버는 본래 손으로 조작하는 레버였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두 개의 핸드스톱 레버는 각각 저음역 쪽과 고음역 쪽의 댐퍼를 따로 따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형태의 핸드스톱은 초기의 스퀘어 피아노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악기가 만들어진 후에 무릎으로 조작하는 두 개의 레버가 추가된 것인데, 문제는 그것이 언제였는가이다. 어쩌면 이 악기가 만들어진 직후에 작업장에서 추가된 것일 수도 있으며, 모차르트가 아직 살아 있었던 어느 시점에 추가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차르트 사후에 추가된 것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모차르트의 피아노 작품을 연주하는 데 있어서 페달링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재고해 볼 필요가 생기게 된다. 연주하고 있는 동안에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없는 핸드스톱으로는 현대적인 의미의 '페달링'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차르트는 피아노 작품을 쓸 때 자신의 악기를 고려하여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페달링'을 의도하지 않았던 것일까? 물론 반드시 그렇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이미 1777년 10월에 아우구스부르크를 방문하여 요한 안드레아스 슈타인의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해 본 후에 무릎 페달에 대하여 극찬을 한 바가 있는데, 그는 연주회에서도 종종 슈타인의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외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상황에 따라서 다른 제작자가 만든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85년에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여러 연주회에서 자신의 악기를 사용하였다는 것도 분명한데, 만약 이 악기에 손으로 조작하는 레버만 존재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오르가니스트들이 스톱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작하여 여러 가지 음색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역시 뛰어난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던 모차르트도 자신의 '페달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어쩌면 저음역 쪽과 고음역 쪽의 댐퍼를 따로 따로 조작하는 두 개의 핸드스톱 레버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특별한 음향 효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톰 베힌도 이 레코딩에서 바로 이러한 것을 시도하였는데, 톰 베힌이 연주하는 악기는 모차르트가 연주했던 악기와는 달리 페달 건반이 없긴 하지만, 핸드스톱 레버를 교묘하게 조작하여 만들어 내는 신비로운 효과는 분명히 흥미로울 것이다.
2) 액션의 개조 : 슈토스메하니크 방식에서 프렐메하니크 방식으로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에는 또 다른 개조의 흔적들을 많이 있는데, 그 흔적들을 자세하게 분석하면 본래의 해머 액션 메커니즘이 빈식 액션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으며, 이것이 현재의 빈식 액션으로 개조된 시점은 아마도?모차르트 사후였다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알 수가 있다. 가령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에서는 빈식 액션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 중 하나인 이스케이프먼트 호퍼의 힌지-레일(the hopper hinge-rail)이 특이하게도 4등분되어 있고 각각이 나사못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을 관찰할 수가 있는데, 이것은 이스케이프먼트 호퍼들의 배열 간격이 이 악기의 건반 너비와 비교할 때 좀 더 좁기 때문이고, 이와 같은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호퍼 힌지-레일이 본래 좀 더 넓은 음역(FF부터 g''')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4등분된 호퍼 힌지-레일을 고정하는 데 사용된 나사못들 중의 일부가 안톤 발터의 1790년대 포르테피아노에서 사용된 것들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호퍼들의 배열 간격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발터가 만든 포르테피아노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특징들 ― D음에 대해서는 간격이 좀 더 넓다든가, 특히 발터가 1790년대에 음향판과 레스트플랭크(wrestplank) 사이의 틈(gap)에 브레이스를 설치하기 시작하면서, 그에 따라 c#' 음과 d' 음(음역이 FF부터 g'''인 경우)에 대한 호퍼들 사이의 간격을 좀 더 넓게 하였던 것들이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의 호퍼 힌지-레일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특징들은 이 호퍼 힌지-레일이 안톤 발터에 의해 대략 1790년 이후에 설치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호퍼 힌지-레일을 들어내면 그 이전에 초기의 힌지-레일이 있었다는 흔적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건반 프레임 뒷부분의 안쪽(호퍼 힌지-레일이 있는 위치)이 톱으로 잘려 나가서 너비가 반으로 줄어들어 있는 것까지 관찰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사실들은 모두 발터가 1790년경 또는 그 이후에 새로 설치한 이스케이프먼트 호퍼의 힌지-레일이 이전에 있던 힌지-레일을 대체한 것이 아니며, 전혀 다른 형태의 액션 ― 아마도 레트로 슈토스메하니크(retro Stoßmechanik) 방식의 액션― 을 개조하여 현재의 빈식 액션으로 바꾸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 뿐인가! 현재의 빈식 액션에서 '카프셀'(Kapsel)이 놋쇠로 되어 있다는 것도 역시 현재의 액션이 개조된 것임을 말해 주고 있는 강력한 증거인데, 나무 대신 놋쇠로 된 카프셀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아무리 이르게 잡더라도 1785년경 이전일 리는 없으며 1790년 이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증거들이 있는데, 결론적으로 모차르트의 포르테피아노는 모차르트 생전에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레트로 슈토스메하니크 방식의 액션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아마도 모차르트 사후에 발터에 의하여 개조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810년에 콘스탄체가 아들 카를에게 보낸 편지는 그러한 가능성을 더욱 더 뒷받침해 준다.
사실 아우그스부르크의 슈타인이 빈식 액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케이프먼트 메커니즘을 갖춘 프렐메하니크 방식의 액션을 개발한 것은 1780년경이었기 때문에, 안톤 발터가 빈에 정착하여 포르테피아노를 만들기 시작했던 1775년경에는 아마도 그 당시에 빈의 제작자들에게 일반적이었던 레트로 슈토스메하니크 방식으로 해머 액션을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높고, 대략 1785년 이전까지는 이런 액션을 고수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발터는 왜 새로운 액션으로 전환했던 것일까? 알폰스 후버의 설명에 의하면, 옛 액션과 새 액션 사이에는 건반의 하강 깊이라든가 무게, 반복음 연주 등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기 때문에 레트로 슈토스메하니니크 방식이라고 해서 연주하기가 더 어렵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레트로 슈토스메하니크 방식의 액션인 경우에는 백체크(backcheck) 시스템을 도입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발터는 레트로 프렐메하니크 방식의 액션을 채택할 경우에는 체크 레일을 도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해머가 이스케이프먼트 메커니즘으로부터 이탈하는 시점을 손쉽게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서, 결과적으로 다이내믹스에 있어서 보다 섬세하고 풍부한 표현력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과 관련하여 안톤 발터는 당대의 다른 제작자들에 비하여 좀 더 시대를 앞서 나가고 있었는데, 발터는 1785년경 이후로 갖가지 실험을 하면서 빠른 속도로 악기를 발전시켰고, 그리하여 이미 1790년대에 그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걸맞는 악기 ― 즉, 격렬하고 빠른 패시지를 연주하는 데 좀 더 적합하고 보다 풍부한 음향을 지니고 있으며 보다 칸타빌레한 표현력이 가능한 악기를 생산해 내는 제작자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이와 같은 스타일의 포르테피아노는 모차르트보다는 오히려 베토벤의 작품을 연주하는 데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반면에, 슈토스메하니크 방식에 의한 액션이 장착된 초기의 악기는 좀 더 단단하고 하프시코드에 가까운 톤과 차분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운드 사이에서 명확한 대비를 보여 주며, 톰 베힌이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풍부한 감정의 변화 과정을 겪는 한 명의 배우라기보다는 연사가 되어 웅변을 하는 것처럼 연주하는 데 보다 더 적합한 악기라는 사실은 깊이 음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겠다. 실제로 모차르트의 작품을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의 액션으로 연주할 때 얼마나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톰 베힌은 벨기에의 포르테피아노 제작자 흐리스 마에너(Chris Maene)가 만든 하나의 악기에 옛 액션(슈토스메하니크)과 새 액션(프렐메하니크)을 교대로 삽입하여, 모차르트가 1780년대에 쓴 네 작품을 연주하였다. 그는 빈에서 아직까지 슈토스메하니크 액션이 널리 퍼져 있었던 1783년에 작곡된 소나타 A장조, K.331은 옛 액션으로, 그리고 새로운 액션이 공식적인 '빈식 액션'이 되어 가고 있던 무렵인 1789년에 작곡된 소나타 B♭장조, K.570은 프렐메하니크 액션으로 연주하였다. 또한 환상곡 D단조, K.397은 두 가지 다른 액션으로 한 차례씩 두 번 연주하여 비교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아다지오 B단조, K.540은 1788년에 작곡된 작품임에도 초기의 액션을 사용하였다. 물론 어떤 액션을 선택했는가에 따라서 페달링의 방식도 바꿨는데, 슈토스메하니크 방식의 액션을 사용할 때는 핸드 소톱을, 새로운 프렐메하니크 액션을 사용할 때는 무릎 페달을 사용하여 연주 스타일의 변화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둔다면 보다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 "터키 행진곡"을 연주할 때는 기발하게도 특별한 스톱을 고안하여 사용하였는데, 두꺼운 종이를 현 위에 올려 놓고 연주한다든가 마지막 코다에서는 발을 세게 구르면서 드럼 효과를 흉내내기도 하였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19세기에 빈에서 제작된 포르테피아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바순 스톱과 터키 음악 스톱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서 주의 깊게 들어 볼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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