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모폰을 비롯한 서구의 유수 음악 언론들은 대부분의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그들의 주장인즉슨 `러시아의 피아니스트들은 우악스러운 팔뚝의 힘만 앞세우고 있을 뿐, 개념이 부족하다.`라는 이유에서 그렇단다. 그러나, 아무리 먼 곳으로 연주 여행을 가더라도 자신의 피아노와 조율사를 함께 대동하는 극단적인 완벽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리히테르
까지 개념이 없다는 이유를 달아 도매금으로 넘길 수 있을까? 그의 `함머 클라이버`나 `방랑자 환상곡` 앞에서 과연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나 있을는지. 그의 슈베르트는 브렌델의 가지런함과는 또 다른 치열함과 단호함이라는 매력을 표출하고 있다. 조금은 거친 것 같은 타건이 오히려 음표에 들어 있는 감성을 흔들어 깨우고 있는 듯하다. 리스트의 b단조 소나타에서는 그야말로 철옹성과 같은 음의 성곽을 쌓아올려 놓고 있는데, 80년대 필립스 녹음에 비해 다이나믹스 변화의 폭도 훨씬 크고, 포르테에서의 분출 역시 더욱 강렬하게 나타나고 있어 답답한 가슴을 후련하게 뚫어주고 있는 레코딩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