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예쁜 여자”가 전국을 강타한다!!
접시닦이에서부터 가수가 되기까지…
2007년 한해는 성인가요의 첨병이라 해도 될 만큼 장윤정을 비롯 땡벌에 강진까지 다양한 트로트 가수들이 성인가요의 일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에 발맞춰 멜로디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가사의 다양성 그리고 현실성으로 많은 성인 팬층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눈물 젓은 과거가 있었다 해도 손이 예뻐 용서해줄게~
거친 세파 헤치며 살아온 그대 여린 손 오늘은 꽉 잡아 줄꺼야..
청소하지마. 빨래하지마. 그건 내가 알아서 할께. 당신의 예쁜 손만 지킬 수 있다면...
고운 얼굴 꾸미는 화장만을 해. 예쁜 패션 고르는 쇼핑 쇼핑만해. 손이.예쁜.여자야.
눈물 많은 여자야. 행복은 이제부터야...
황홀할 정도의 감미로운 목소리 주인공 가수 전준길에 “손이예쁜여자” 라는 노래말이다
올해 8월 음반을 발표한 전준길은 10만 UCC 몰지각 뉴스라는 패러디물과 함께 벌써부터 전국에 손이예쁜 여자들을 향한 엄청난 사랑몰이를 하고 있다.
“ 요즘 과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아~눈물 젖은 과거라도 손이 예쁘다면 지켜주고 싶고 호강시켜주고 싶다는 21세기 트랜드 에 아주 걸맞은 노래라고 생각해요~. 잘 아시겠지만 손은 제2의 얼굴이라고 하잖아요. 아직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진 못했지만 제 사람이다 싶으면 제일 먼저 손을 볼거예요. 어렸을 적에는 얼굴 예쁜게 제일이었잖아요. 하지만 이제는 그 사람의 살아온 손을 보면 그 사람 마음 속을 보는 것 같다니까요.
누구나 스타급 가수가 되기까지는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다. 시골청년 가수 전준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졸업 후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정준길은 기타 하나만 달랑 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당시 미사리라는 카페 촌이 유명세를 타던 때라 인맥도 없고 오갈 때도 없는 전준길 에게는 음악을 시작하기에 최고의 장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인맥도 연고지도 없던 시골청년 전준길 에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은 만무한 일이였다.
이를 악물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닥치는대로 막일을 해가며 번 돈으로 중고 티코를 한대를 샀다.
“이부 가지며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싫고 다니며 미사리를 배회했죠... 업소 주차장에 몇날 며칠을 몰래 주차해가며 흘러나오는 스피커소리에 유명가수들의 노래와 무대매너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서러움에 북받쳐서 흘린 눈물만 모아도 서울이 홍수가 났을 거라고 농담 섞긴 이야기를 한다.
숙명적 사건이 터져버린 그날도 어김없이 차 안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중 가게 문 옆에 주방보조 구함이라고 쓰여있는 전단지를 발견하고는 그냥 무작정 가게로 들어가 주방보조를 하겠다고 떼를 썼다고 한다. 그때부터 저는 접시 닦이며 유명가수들 현수막 붙이는 일 등등 온갓 허드렛일은 다했죠.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옆에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놈이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행운은 예상 밖으로 빨리 다가왔다. 그때가 크리스마스 2부였었어요... 눈이 많이 왔었는데.. 유명가수가 길이 막혀 공연이 펑크가 날 상황이었다. 큰일이었죠. 그때 평소 제 실력을 눈여겨봐주신 지배인님께서 “준길아, 니가 올라가서 한번 해볼래?" 제게는 그 한마디가 정말로 성서에 나오는 하느님 목소리로 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 동안 갈고 닦아온 실력을 보일 기회가 온 것입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 비좁은 차 안에서 손가락 비벼가며 혹독한 추위에 연습한 것이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해요. 이 일로 인해 가수 정주나는 미사리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으며 비싼 가수 대열에 섰다고 한다. 제가 그렇게까지 어렵게 음악을 시작한걸 아는 분은 아마 아무도 없을걸요. 그때 그 지배인님 빼고는…. 시간이 나는 대로 작사 작곡 편곡 등에도 공부 중입니다. 반드시 만인이 좋아하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라”라는 말이 있죠!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