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u returns repackage] 마네킹
"한 곳만 바라보는 네가, 한 사람 밖에 볼 수 없는, 내 모습인 것 같아서.." 마네킹 中
이루의 정규 3집인 [ERU RETURNS]는 기존의 발매작 중 가장 양식적으로 안정된 음반이다. 그의 음악적 성격은 보는 측면에 따라 흔하다고 할 수도 있는 발라드라는 장르에서, 가장 80년대적 정서와 현대적인 어레인지를 적절히 섞는, 복고 지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형식의 완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 음반이다. 정제된 목소리, 80년대의 무드를 재구성한 악기구성, 단순한 멜로디와 리듬을 반복하는 악곡구성, 세부적인 곡보다 전체적인 음반에 집중하게 하는 연속적 흐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긴장감이 3집 음악의 특징이다.
첫 번째 타이틀로 선정된 [둘이라서]의 경우, 첫 싱글로서의 임팩트 때문에 선택된 측면이 짙었다면, 정규3집 수록 곡이면서, 다시 어레인지되어 본 리패키지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마네킹]은 음악 자체가 주는 일종의 형식미로써 청자에게 호소하는 곡이다. 현대음악이 소리의 겹침을 통해 형성한 두터운 음의 텍스처를 가진. 지나치게 채우는 음악이라면, 마네킹은 채우기보다 비우는, 여백이 돋보이는 곡이다. 훌륭한 멜로디임에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고 소박하게 풀어내는 까닭에 더 집중하게 하고 빠져들게 한다. 처량하고 약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곡임에, 들을수록 입가에 맴돌고 귓가를 스친다.
[마네킹]은 이루만의 음악적 특성이 잘 구현된 곡이다. 게다가 이토록 확실하게 전달되는 감정선이라니. 특히 "사랑한다 외쳐보아도, 사랑을 다 모두 주어도 뒤돌아 보지 않는 너
아무 말 하지 않는 너"로 이어지는 가사가 보여주는, 혼자 하는 사랑은 늘 그렇듯이 외롭고 쓸쓸하지만 어떤 종류의 사랑보다 순수하고 그렇기에 더욱 매혹적이다. 때로 어설픈 위안보다 고통을 사랑하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이 곡은 그것을 증명한다. 아픔을 외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사랑이 끝나고 나면 그녀(혹은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고 우리는 다짐하듯이 말하지만, 우리에겐 그(혹은 그녀)를 사랑했던 시간들이 의미 있다. 만약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의, 그리고 당신의 삶은 더 쓸쓸하고 외로웠을 테니까. 더 이상 아무도 그 시간을 기억하지 않을 때 나는 그 시간을 추억할 것이다. 당신이 그렇듯이.
PS. [마네킹]에는 이루의 목소리 외에 Fly to the sky 환희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어느 부분에서 참여했는지 유심히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