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밴드의 [The Happiest]
디지털시대에 역행하는 이들이 만든 거칠고 용감하며 솔직하고 순수한 앨범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문학적이고 정제된 가사로 대중음악의 정통성과 독자성을 상징하던 산울림의 김창완이 젊은 음악인들과 밴드를 결성하며, 김창완밴드 [The Happiest]를 발매한다.
[The Happiest]는 1997년 발매된 ‘산울림 13집’ 이후, 11년 만에 발매되는 앨범으로 ‘아날로그 빈티지록사운드’를 표방하며, 원테이크 레코팅 방식으로 녹음되었다. 록음악의 원천사운드를 구현해 내기 위해 일본에서 사운드디렉터를 초빙하여 진행된 녹음과정에서는 사운드의 공간감과 움직임, 그리고 공명감을 살리기 위해 스튜디오 문을 활짝 열고 녹음을 하기도 하고, 악기와 악기들이 서로 방해하며 부딪히는 소리와 앰비언스를 통해 들어오는 멤버들의 숨소리와 웃음소리 마저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정규앨범을 발표하기 전 EP 형태로 공개된 이번 앨범에는 총6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김창완이 직접 그린 재킷 이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렸음을 깨달은’ 다섯 남자의 당혹스러움과 외로움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The Happiest]는 새로운 밴드 활동에 대한 김창완의 자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활기찬 연주곡 “Girl Walking”으로 시작된다. 최근의 록음악 트렌드와도 동떨어져있지 않는 모던하고 세련된 사운드로 “이제 밴드음악을 합니다”라고 당당히 고하는 느낌이다.
두번째 트랙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에서 김창완은 ‘열두 살과 열여섯, 예순 둘과 일곱 살, 여자와 남자, 어린아이와 어른이 각자의 인생을 살고 그렇게 별 것 아닌 하루하루가 쌓여 인생은 흘러간다’고 인생에 대한 관조와 그 안에 서린 따뜻한 연민을 읊조리듯이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그 사람이 짜준 모자를 써보기도 하고 함께 먹었던 스파게티를 먹어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쓸쓸함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은 세번째 트랙 “모자와 스파게티”는 사소한 일상의 단면을 건조하고 무표정하게 이야기하는 김창완 특유의 작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별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노래하는 네번째 트랙 “제발 제발”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산울림의 음악 스타일에 가장 근접한 형태를 들려주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떼쓰는 마냥 흐느끼는 김창완의 목소리는 일견 유머러스하지만 ‘실제 이별의 모습은 유행가 가사처럼 그렇게 근사하지만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리얼리티를 담아내고 있다.
앞의 곡들이 비교적 일반적이고 제3자적인 관점에서 쓰여진 곡이라면, 다섯번째 트랙 “FOLKLIFT(지게차)”는 김창완이 겪었던 개인적인 비극에 대한 노래이다. 지금까지 그가 만들었던 곡들 중 가장 서정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포크록 넘버는 바로 올해 초 지게차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삼형제’의 막내 (故)김창익 씨에 대한 곡이라는 점에서 남다르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슬픔을 노래하는 “FOLKLIFT”를 영어가사로 표현, 직접적인 슬픔으로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직접적인 감정에로의 몰입을 방해하는 곡쓰기 역시 여전한 김창완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이어지는 인생과 사랑에 대한 찬가 “우두두다다” 는 이번 앨범에서 가장 밝은 곡이다. 간결한 가사와 반복적인 리듬, 장난기어린 이펙터 사용과 웃음소리, 박수소리로 앨범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마무리해내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The Happiest]는 디지털시대에 역행하는 이들이 만든 거칠고 용감하며 솔직하고 순수한 앨범이다. 록밴드가 처음 생겼을 때처럼 모두 함께 연주하고 녹음하며, 과감하게 멤버간의 교감을 사운드 내에 담아낸 따뜻한 사운드에, 무심히 내뱉고 거침없이 지르고 한없이 읊조리는 김창완의 보컬과 무심한 듯 폐부를 찌르는 예리함을 가진 노랫말은 분명 산울림이 아니며, 김창완도 아닌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다.
김창완밴드는 산울림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올드팬들과, 산울림을 모르는 새로운 세대의 음악팬들 모두에게 충분히 만족을 선사할 만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김창완은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며, [The Happiest]는 바로 그러한 ‘가장 행복한 사람, 김창완’을 노래하는 앨범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