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행복을 노래하는 비올라 연주자, 리처드 용재 오닐
지난 2004년 5월 KBS의 한 프로그램에서는 오래전 미국으로 입장된 한 정신지체 여성과 그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도했다. 1958년 당시 5살의 나이로 미국으로 입양된 이복순씨, 머나먼 타국에서 입양아로, 장애인으로, 미혼모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가야만 했던 그녀에게 삶의 희망과 기쁨을 주었던 것은 바로 그의 아들 용재였다. 그의 이름은 리처드 용재 오닐,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음악인의 한 사람이자, 세계적인 비올리스트로 주목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가족의 아픈 과거에도 불구하고 용재는 어머니의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따뜻한 심성을 지난 한 사람으로, 또한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 음악가로 자라났다. 그리고 방송을 통해 소개된 그의 아름다운 삶과 음악에 대한 열정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음악가로서 리처드 용재 오닐은 뉴욕 타임즈로부터 ‘최고’라는 찬사와 함께 LA 타임즈로부터는 “기교적으로 한 치의 실수도 없는”, 그리고 달라스 모닝 뉴스로부터는 “가장 눈부신 비올라 연주... 오닐은 풍부한 음색과 정확한 음정, 그리고 섬세한 연주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비올라라는 악기의 탁월함을 보여줬다”라는 극찬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비올리스트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 과정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는데 이 같은 기록은 줄리어드 역사상 유일하다고 한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2000년에 LA 필하모닉과의 공연으로 데뷔한 이래 엘리엇 카터의 협주곡으로 카네기 홀 데뷔, 링컨 센터 챔버 뮤직 소사이어티와 함께 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연주 등을 비롯하여 북미지역과 유럽, 아시아 등지의 권위 있는 음악홀과 도시에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5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15살 때 비올라로 악기를 바꿨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시 챔버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비올라를 연주하게 됐는데, 이 때 비올라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고, 이를 계기로 비올라 연주자가 됐다는 것이다. 작년에 그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는 자신의 악기 비올라에 대한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비올라는 바이올린보다 더 깊고 어두운 소리를 냅니다. 마치 검은 벨벳 같기도 하고, 그래서 더 달콤한 소리가 나죠. 바이올린보다는 훨씬 더 사람 목소리에 가까운 소리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닉으로부터 오디션 제의를 받는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로부터 러브 콜을 받으면서도 솔로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밝혔다.
“저도 오케스트라 연주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연주자 속에 섞여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는 것도 참 좋긴 합니다. 혼자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의 한 부분이 되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비록 개인이 음악사에서 단체만큼 중요해 질 수는 없다 해도, 오로지 ‘나’만의 음악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 자신만의 꿈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것 - 그것이 크게 거론될 만한 것이 아니라 해도- 그런 사실이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그는 오케스트라 활동을 포기하는 대신 실내악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세종 솔로이스츠의 수석 비올리스트 겸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외에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는 줄리아드, 과르네리, 멘델스존, 오리온 스트링 콰르텟, 빈-베를린 앙상블 같은 실내악단들과의 앙상블 연주를 비롯해 길 샤함, 초량린, 정경화, 조슈아 벨, 에드가 마이어, 게리 호프만, 스티븐 이셜리스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협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현대 음악 연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Elliot Carter, Oliver Knussen, Mario Davidovsky, David del Tredici, Charles Wuorinen, John Zorn 등의 현존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했고, 세계 초연을 맡은 경우도 있었다. 유니버설 뮤직과의 계약 이외에도, Naxos, Centaur, Tzadik 등의 레이블과 음반작업도 중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Naxos에서 발매된 두 개의 음반에는 안톤 베베른과 아놀드 쉔베르크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는데 뉴욕 타임즈에서는 그의 연주가 무언가를 "계시"하는 듯하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현재, 1699년에 이탈리아의 Giovanni Tononi가 제작한 비올라를 사용하고 있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2005년에 유니버설 뮤직을 통해 발매한 첫 솔로 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올해 새로운 앨범으로 국내 음악팬들을 찾는다.
이번 앨범은 한국 음악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감미롭고 아름다운 음악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가슴 뭉클한 감동과 아련한 슬픔을 비올라 선율에 담아낸 한스 에릭 필립의 ‘어부들’ 모음곡을 시작으로, 기타와 첼로가 더해져 매력적인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브루크뮐러의 야상곡과 소르의 로마네스카, 그리고 드라마 ‘옥이이모’의 주제곡으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오펜바흐의 ‘자클린느의 눈물’, 클래식 소품 가운데서도 명곡으로 꼽히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와 로망스 등 그야말로 주옥같은 곡들이 비올라의 벨벳처럼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색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그 외에도 이 앨범에는 클레냥의 로망스 1번, 보테시니의 엘레지 1번, 라프의 카바티나, 블로흐의 기도 등 그 이름은 낯설지만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닌 곡들이 숨은 보석처럼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우리 귀에도 익은 러시아의 민요 ‘나 홀로 길을 가네’와 우리 동요 ‘섬집아기’가 앙코르곡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번 앨범을 듣고 있으면 마음 가득한 슬픔과 외로움도 어느 순간 아름답고 행복한 기분으로 바뀌는 듯하다. 이건 놀랍게도 리처드 용재 오닐의 따뜻한 성품, 그리고 그의 악기 비올라가 지닌 포근한 음색과 너무나 닮아있다!
지난 해 그가 나에게 감동을 줬던 말을 이 앨범들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소개하고 싶다.
“연주는 인생과 마찬가지로 마치 누군가를 잘 알아가는 것과 같아요. 처음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완전히 그에게 빠져있기 쉽죠. 그러나 시간이 가고, 10년, 20년이 지나면서 그런 느낌은 변하고 더 깊어집니다. 예술가도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비올라와의 음악을 향한 관계는 인생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천천히 변해갈 테지요. 현재 저의 목표는 더 나은 연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막연한 바람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최고의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필요한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 김경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