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PD출신의 조경서대표가 설립한 레이블 포모뮤직의 첫 작품. 그는 90년대 인디음악을 방송가에 전파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던 프로듀서로 인디관련 컴필레이션의 최고작 <Open The Door- 이젠 모두 스타가 된/ 미선이, 체리필터, 언니네이발관, 크라잉넛, 성기완, 노이드가든 등 참여 1998년>를 제작했으며, 인디씬 트로트 오마주의 대표선수 볼빨간의 정규앨범을 제작했고, 이제는 수퍼스타가 된 그룹 “넬”을 발굴하여 1, 2집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특히 넬의 데뷔앨범은 델리스파이스의 윤준호(AKA juno3000)가 프로듀서로 참여해 화제가 되었다 이번 시데리끄의 EP역시 “조경서 + 윤준호” 의 첫 산물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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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데리끄의 EP를 듣고
2008년 현재 한국의 인디음악 씬에서는 어떤 트렌드가 유행하고 있을까? 척박하기 그지없는 황무지 같은 문화풍토이지만, 그래도 음지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 인디음악은 외관상 양적 팽창을 계속해가고 있는 듯하다. 포스트락, 일렉트로닉, 슈게이징, 포크, 힙합, 레게, 월드뮤직, 데쓰메틀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장르 영역을 개척해가는 움직임도 꽤 활발해 보인다. 그러다보니 다달이 쏟아져 나오는 ‘인디’ 냄새를 풍기는 레코드를 모니터링하는 일도 업계 종사자가 아닌 바에야 일반청취자의 입장에선 벅찬 노릇이다. 지금 한국의 인디 씬에서는 전세계에서 유행하는 거의 모든 장르와 그들 간의 하이브리드가 다각도로 실험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언제부턴가 ‘포스트 펑크’와 ‘개러지락’이라고 명명된 장르는 세계 락 음악시장을 주도하는 주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런 만큼 한국의 인디락 씬에서 그러한 장르적 탐색이 활발히 시도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거물급 신인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도 딱히 놀라울 것 없는 맨체스터나 뉴욕과 달리, 그들과 같은 지역적 기반과 뿌리가 전무한 이곳 서울에선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오리지날’한 간지가 나는 밴드를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말하자면, 어느날 갑자기 스트록스나 인터폴, 에디터스 같은 걸출한 팀이 등장했을 때 벨벳 언더그라운드나 조이 디비젼 같은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모종의 전승관계가 이곳 한국에는 아예 없다는 얘기다. 포스트 펑크나 개러지락이 서구에선 일종의 ‘리바이벌’ 붐이라면, 한국에서 그 장르는 거의 맨땅에 헤딩하며 새롭게 시도되는 일종의 미개척분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세례를 받은 한국의 인디 밴드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표현영토를 개척해가고 있는가. 사실 이 장르는 어느 정도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하고 있긴 하지만 토양과 바탕이 미비한 한국의 인디 음악계에선 상당히 낯설고 이질적일 수도 있는 장르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한때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 허클베리 핀 같은 밴드들이 ‘펑크’나 ‘그런지’라는 동시대의 형식에 몸을 담그며 나름의 독자성을 확보했듯이, 이른바 한국의 포스트 락을 표방하는 음악인들도 장차 뚜렷한 그들만의 색깔을 찾아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데리끄의 EP는 한국의 포스트 펑크/개러지락 수용현황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정직하게 말해서, 한국 포스트 락 씬의 수준을 가늠할 만큼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나로선 사실 시데리끄의 EP에 담긴 4곡에 대해 책임감 있는 코멘트를 하기 어렵다. 다만 이들의 EP를 접한 청취자들이 시데리끄의 음악에서 어떤 기시감을 느낀다면, 그건 당연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들은 사운드는 앞서 언급한 스트로크, 인터폴, 에디터스 등을 통해 익숙해진, 이제는 상당히 주류화된 서브컬쳐의 분위기를 품고 있다. 그러니 ‘새롭다’라기보다는 제법 친숙한 느낌을 풍긴다. 전곡의 가사가 영어로 되어 있다는 점도 그런 인상에 일조하였겠지만, 시데리끄의 EP에 실린 곡들의 포스는 다분히 ‘물 건너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들의 음악은 포스트 락의 문법에 어느 정도 길들여진 락팬의 입장에서 대체로 무리 없이 들린다. 만약 이들이 뉴욕이나 맨체스터나 버밍햄 출신이었다면 ‘또 하나의 포스트 락 밴드 등장’으로 범상하게 여기며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이 레코드가 대한민국이란 주변부의 영토에서 일궈낸 작업의 산물이란 점에서는 범상치 않다.
물론 물 건너온 듯하다거나 우리나라 밴드 같지 않다는 인상은 청취자의 주관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러한 평가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한국에서 이런 오리지날한 느낌의 포스트 락을 구사하는 밴드가 등장했다는 사실에 각별한 가중치를 둘 수 있는 반면, 똑같은 이유로 이미 익숙한 트렌드에 발을 맞출 뿐 밴드 자신의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우리나라 밴드 맞아?”라는 반응은 이들에게 칭찬일 수도 있고 함정일 수도 있다. 다만 아직 4곡만이 시험대에 오른 상태이기 때문에 시데리끄의 음악성에 대한 전면적인 평가는 다소 유보하는 편이 옳을 듯하다.
적어도 이들의 EP는 아직 진행형인 이 밴드의 잠재된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해준다. 명료하고 접근성이 용이한 사운드로 귀를 잡아끄는 첫 곡 Unknown Passenger는 시데리끄가 추구하는 음악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트랙인 듯하다. 포스트 펑크, 개러지락의 코드에 익숙한 청자들이라면 귀가 솔깃할만한 곡이다. 흥미로운 점은 두 번째 곡 Struggle에서는 루츠 락(Roots Rock)의 향취가, 세 번째 곡 Something Else에선 얼핏 핑크 플로이드를 연상시키는 어프로치가 느껴진다는 것인데, 단순한 개러지풍의 사운드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이런 부분들이 시데리끄라는 밴드가 장차 장르의 클리셰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진취적인 그들만의 사운드를 개척해가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들은 아직 어떤 경계선에 놓여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제한된 정보와 음원만 가지고는 이들의 감춰진 역량을 충분히 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