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앨범, 그것도 ‘발라드 컬렉션’이란 음반 타이틀은 우리에게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좋지 않은 선입견을 제공한다. 우선 첫 번째로 정식 CD로 발표되는 뮤지션의 온전한 음반과 달리 터무니없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으며, 밴드가 추구하던 기본적인 노선을 벗어나 일시적인 주목만을 노리는 일종의 ‘소품’들을 담고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수록된 모든 곡을 듣고 나면 그러한 선입견들은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기존 음반에서 들을 수 있던 양질의 사운드를 그대로 가지고 있음은 물론, ‘발라드’라고는 하지만 뮤지션들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노선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새로운 시도를 담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밴드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의 음악적 영역을 한 단계 확장시킨 것이며 청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앞으로 이들이 발표할 새로운 음반의 방향성에 대한 조심스런 예측이 가능하니, 이쯤 되면 진수성찬은 아닐 지라도 색다른 별미로 부담 없이 즐기기에 더 없는 선택이 될 듯 하다.
다운 인 어 홀은 ‘Pain Of Waiting Someone’으로 참가했다. 이미 지난 해 발표한 정식 두 번째 앨범 [2nd Road]를 통해 확고하게 다져진 음악스타일은 서정적인 발라드 넘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어, 흙먼지 풍기는 한적한 웨스턴의 풍경이 머리에 그려지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현지 레이블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홍보 비디오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그들의 팬이라면 이미 익숙할 지도 모를 넘버.
‘Love Song Only For You’는 이번 컴필레이션에 참여한 유일한 일본밴드 쓰바키(Tusbaki)의 곡이다. 쓰바키는 이미 5회 이상 크고 작은 국내 공연에 참여하는 한편 정식 라이선스 음반을 공개하여 자신의 존재를 알린 바 있다. 일본색이 짙어서 적잖은 이질감을 느낄 수 있던 첫 번째 음반 수록곡에 비해 반복되는 피아노의 중독성 강한 멜로디라인과 함께 한층 멜로디를 강조해, 국내에서 보다 넓은 팬 층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탑재했다.
의도적인 잡음으로 시작하는 금요일 오후의 ‘I Hate You’는 2006년 발표한 첫 번째 싱글에서 보여줬던 우울하고 어두운 서정성과 강렬한 클라이맥스의 공존이라는 밴드의 특징이 그대로 이어지는 연장선적인 작품이다. 기존 모던락이나 브릿팝 밴드들의 음악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만한 곡. [발라드 컬렉션]에 수록된 음악 가운데에서는 가장 현재의 트렌드에 가까운 음악이라고 하겠다.
포스트 그런지 밴드 이너스톰은 ‘The Isle’을 담았다. 2004년 결성해 한 씬에서 고집스럽게 활동하고 있는 밴드의 음악적인 성숙이 그대로 드러난다. 서정적인 베이스기타 연주와 편안하고 밝은 보컬 라인에서 격정적이고 묵직한 사운드로 변모해 가는 점층적인 과정은 단번에 청자를 사로잡을 만큼 그 흡인력이 강하다.
이미 두 장의 정규음반을 통해 국악과 결합된 메틀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고스트윈드의 ‘Illusion’은 그 멜로디의 진행에 있어서는 예전에 발표했던 곡과는 달리 국악적인 면이 철저하게 배제되어있지만, 특유의 판소리에 기본을 둔 보컬과 해금이나 대금과 같은 국악기의 절묘한 사용으로 밴드의 오리지널리티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특히 2집 음반의 사운드에서 도출된 후주부분의 심포닉한 전개는 앞으로 이어질 밴드의 방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게 만든다.
세상은 변하고 음악을 듣는 방법도 바뀐다. 물론 컴퓨터를 통해 다운로드받아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과 음반을 사서 오디오를 통해 감상하는 것이 같은 결과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차후에 다시 생각해야할 문제겠지만, 어쨌든 마음을 열면 좋은 음악을 호흡할 수 있는 길은 예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진 것은 재론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많은 디지털 음원들이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 자체만으로 그다지 만족할 만한 성과물이 없었다는 것이 과연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저 시류에 편승하여 졸속 제작된 이러한 수많은 음원들과 확실한 경계를 그을 수 있는 양질의 디지털 음반이다.
글 송명하 (핫뮤직 수석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