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DUB)’이라는 장르가 있다. 레게의 부산물로 파생된 덥은 각 악기의 다양한 믹스와 효과음, 특히 에코와 반향음을 특징으로 하는데, 한마디로 몽환적이고도 최면성이 강해서 듣는 이를 나태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고, 복잡한 세상의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쉽게 말해 ‘레게’와 ‘트립합’ 사이에 존재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는 ‘덥’은 그야말로 ‘음악=휴식’이라는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음악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 소개하는 그룹 ‘파프리카(Paprika)’의 음악이 바로 이런 음악이다.
부드럽고 향기로우며 색깔로 예쁘지만, 먹어보면 맵고 톡 쏘는 맛까지 있는 야채 ‘파프리카(paprika)’의 느낌 그대로, 이들의 음악은 별 생각 없이 들으면 그저 편안하고 한없이 노곤해지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그 치명적 매력에 중독되어버린다.
그룹 ‘파프리카(paprika)’는 고진호 (보컬, 프로그래밍, 리듬기타), 김혜원 (건반, 보컬), 김헌기(기타, 보컬), 최민호 (베이스)의 4인조 밴드로서, 예전에는 ‘수염공화국’이라는 이름아래 <아우라>, <레이디피쉬>, <디지비디> 등 홍대 클럽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으며(2005년부터 활동), 전주국제영화제나 수많은 록 축제는 물론, 자우림 콘서트 게스트 등으로 참여하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번 데뷔앨범은 말 그대로 ‘파프리카적인 덥(dub)’의 전형을 보여준다. ‘내가 다 버린 그 모든 것들, 내가 뺐긴 그 모든 것들, 신경쓰지 않는 걸’이라는 자조섞인 가사가 인상적인 <이제 남은 건 단지 5분>, 마치 갈 곳 없는 비내리는 새벽의 쓸쓸한 거리 풍경이 연상되는 주술적인 트랙 <Dancing in the rain>, 담배연기로 자욱한 어느 자메이카의 바에서 연주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듯한 <My friend> 등은 ‘파프리카(paprika)’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트랙.
하지만 이들이 푹 젖은 신문지마냥 무기력한 몽환을 꿈꾸는 건 아니다. <I don’t know who you are>나 <Hero>는 대중적인 멜로디라인으로 팬들에게 쉽게 어필될 것이라 예상되며, <Naked runner>의 신나는 질주감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어깨가 들썩이게 만든다.
본 앨범은 전체적으로 신인 밴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모든 곡에 ‘파프리카(paprika)’만의 개성이 살아있는데, 무엇보다도 매 트랙마다 유연하게 듣는 이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능력은 수십 년 경력의 프로 뮤지션 뺨칠 만큼 능수능란하다. 참고로 본작은 그룹 <자우림>의 리더, 이선규 가 프로듀스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