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밴드가 아닌...퓨전 재즈 그룹 모이다(Moida)의 데뷔 앨범
그것이 전업이든, 부업이든, 어떤 형태로든 명색이 글 밥을 먹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반인 보다는 글을 쓴다는 것에 익숙하고 수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나는 벌써 보름 전에 의뢰받은 글에 대해 단 한 줄도 시작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막막함을 뻔히 알면서도 앨범 해설 의뢰를 정중하게 거절하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하고 있다. 앨범의 라이너 노트라는 것은 대개 이렇다. 음악에 장치된 아름다움만 이야기 하든지, 혹은 억지로 찾아내서라도 해서 내가 채워야할 단어와 수사만 조합하면 그만인 것이다. 시시콜콜, 너저분하게, 구차하게 솔직함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백 장의 앨범 라이너 노트를 씀으로써, 고료를 받았던 사람으로서 대부분의 글들은 전술한 조건에 의해 차라리 편하고 의례적인 작업이었다. 그러나 더러는 이렇게 편하고 의례적일 수 없는 일들도 있다. 그 ‘더러의’ 경우는 내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거나, 멀리서나마 그들이 겪었던 치열한 창작의 고통, 기쁨, 좌절을 목격한 경우일 때이다. 내가 그토록 흠모하는 팻 메스니든, 마일즈 데이비스든, 빌 에반스의 음악을 설명할 때에도 익명의 다수를 향해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내게 필요 이상의 시간과 고민을 안겨주는 부담스러운 글들은 내게 ‘일부러’ 해설을 부탁한 그 음악의 주인공들에게 향하는 최소한의 양심이자 태도이다. 그들이 거쳐 왔던 우여곡절을 목격한 이로서 함부로, 아니 감히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야 겨우 써 내려가는 이 음악에 관한 설명이 바로 그렇다.
그들을 처음 만난 것은 2001년 어느 재즈 라이브 클럽에서였다. 당시 나는 KBS 위성 TV에서 방영되었던 재즈 전문 방송 프로그램 ‘재즈 클럽’의 작가 겸 음악 감독이었다. 그들의 음악을 염탐하러 간 목적은 재즈 전문지에 소개된 기사의 호평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20대 중반의 젊은 재즈 뮤지션들이 모여서 만든 퓨전 재즈 밴드 ‘모이다’가 라이브에서 보여준 음악적 수준은 내가 맡고 있는 음악 프로그램으로 당당히 소개될 수 있는, 아니 그 이상의 것이었다. 담당 PD에게 나의 목격담과 확신을 강하게 피력했고, 그들은 방송을 통해 내 주장의 옳음을 증명해 주었다. 꽤 오래된 시간이기에 낱낱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조용필의 ‘단발머리’의 리프(Riff)를 풀어서 세련된 퓨전 재즈로 발전시키고, 미국의 퓨전 재즈 그룹 스파이로 자이라를 연상케 했던 도회적이고 오밀조밀한 구성력은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런 남다른 애착 때문이었는지, 방송이 끝난 후에도 개인적으로 그들과 지속적인 만남을 가졌고, ‘모이다’의 멤버 중 누군가는 내가 아끼는 제자와의 열애 끝에 부부가 되는 기묘한 인연도 있었다.
‘모이다’는 갑자기 난데없이 나타난 신인 밴드가 아니다. 언제 그들이 그룹 결성을 모의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 기억 속에서도 2000년, 혹은 2001년에 이미 존재했던 구력 6-7년차의 중고참 밴드이다. 그들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시간들을 휘휘 돌아 오늘에서야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모이다’는 여전히 신선한 활력으로 가득한 젊은 밴드이지만, 우리나라 음악 바닥에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두루 겪은 이들의 조합이다. ‘모이다’에 보컬리스트 이은미를 더하면 그것이 이은미 밴드이다. 팀의 리더인 색소포니스트 이인관은 서울 재즈 아카데미 1기일때부터 색소폰 잘 부는 20대 초반의 뮤지션으로 나도 그 입소문을 들었던 바 있다. 그는 김수열, 신관웅, 이정식 빅 밴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리드 섹션의 주인공이었을 뿐만 아니라 말로, 웅산, BMK(김현정), 박성연 이은미, 신효범, 노브레인, 정수라, 강성훈, 유열, 한영애, 박상민 등의 앨범 작업, 콘서트를 두루 섭렵했던 베테랑 세션맨이다. 연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한 키보디스트 김종익이 자신의 재능을 빌려준 대상은 이은미, 빅마마, 거미, 휘성, JK 김동욱, 심수봉, 김범수, 웅산, 리아, 김조한, 양방언, 이선희, 권진원, 유열, 하림, 장필순 등으로 나열된다. 편곡자로도 JK 김동욱, 신승훈, 영화 ‘조폭 마누라’ 앨범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잘 생긴 외모 덕분에 여성 팬의 인기가 유난한 베이시스트 최훈 역시 이은미, 이승환, 장혜진, JK 김동욱, 브라운 아이드 소울, 신효범, 김연우, 김윤아 등의 음악을 빛낸 조연이다. 그는 퓨전 재즈 그룹 ‘웨이브’의 일원이기도 하다. 드러머 안병범의 이력도 다채롭다. 그의 역동적인 드럼은 이은미, 태진아, 유영석, 유열, 김종서, 김애라, 믿음의 유산의 앨범 등의 라이브에서 반드시 필요로 했던 리듬의 중추이다. 2004년 후반 늦깎이로 ‘모이다’에 합류한 기타리스트 박경호 역시 세븐, 빅마마, 휘성, 거미, 김범수, BMK의 파트너였기에, 세션맨으로서 상종가를 구가하는 이들이 모인 ‘모이다’의 구성원으로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다.
‘모이다’는 이렇게 나열하기조차 힘든 많은 뮤지션들과 함께 음악 작업을 행했던 프로페셔널 세션들이 의기투합해서, 자기들만의 소리를 찾아내고자 모인 팀이다. 그들에게 감사한 것은 타인의 음악에 자신의 음악적 능력을 바치고, 헌신하고, 기여함으로써 쌓았던 여유들을 진정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열망의 집결체인 ‘모이다’에 옮겨 놓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서로 바쁜 생활 에서도 6년여의 시간동안 오늘의 앨범을 준비해왔고,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본 데뷔 앨범을 위해 몇 번의 실험과 자기 검열을 거쳐 왔다. 그들은 돈 안되고, 조명 못 받는 재즈 팀을 꾸려가면서 필연적으로 경험해야 할 잠정적 해체도 했지만,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꿈을 다시 찾기 위해 2004년부터 다시 모여 권토중래( ??6)를 도모해왔다. 2004년에는 재즈 전문지 MM JAZZ의 CD 샘플러 작업을 빌려 재결성을 확인시켜 주었고, 틈틈이 짬을 내어 크고 작은 재즈 공연에 ‘모이다’의 이름을 걸고 참여했다. 그리고 2004년부터 각자의 주머니를 털어 만든 돈으로 직접 자신의 음악을 완성해서, 비로소 그 성과를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설명하고 있는 이 앨범이고, 지금 당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