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3차예선까지 진출했다가 결선 진출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폴란드 음악협회 주최 우승자 초청연주에 이례적으로 우승자 대신 초청됨으로써 커다란 화제를 일으켰던 주인공 김정원.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차세대 피아니스로, 그리고 이미 유럽의 무대에서도 섬세한 음색과 탄탄한 테크닉, 강렬한 카리스마로 그 실력을 인정받은 그가 2001년 쇼팽의 스케르쪼 전곡과 환상곡, 뱃노래가 수록되었던 첫 음반 이후 4년만에 피아니스트로서 과감한 도전인 '쇼팽의 24개 연습곡'이 담긴 두번째 음반을 내놓았다.
그가 이번에 선택한 레퍼토리인 쇼팽의 에튀드는 고난이도의 테크닉과 쇼팽의 감성이 절묘하게 융합되어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꼭 한 번은 거쳐가야할 관문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경우, 피아노를 전공하려 하는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피아노 실력을 객관적으로 판단받는 테스트 곡으로 쓰여지는 중요한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연주자와 감상자들 모두에게 많은 포커스를 받는 만큼, 제대로 해석하는데 상당한 고민을 요하기도 하는 이 에튀드를 김정원은 논리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자신의 멋을 살려 연주해 내고 있다.
낭만파 음악의 선두주자로 일컬어지는 쇼팽. 하지만 그는 엄격한 18세기식 음악교육을 받았으며 그가 가장 강조했던 교본은 바흐의 ‘평균율 조곡’ 이었다는 면은 ‘낭만’ 이라는 이름아래 자칫하면 지나치기 쉽다. 사실 이런 부분은 쇼팽이 의외로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중요한 요소들인 것이다. 달콤하고 가슴에 와닿는 음악을 자랑하는 쇼팽의 피아노 곡, 그러나 그 뒤에 숨어있는 절제되고 정제된 순수한 세계까지 살려내는 것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있어서 쇼팽에게 다가가는 가장 중요한 키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김정원은 이러한 쇼팽 음악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다. 쇼팽이 세심하게 악보에 표기한 지시말들과 그 사이의 행간까지도 모두 읽어서 연주해내는 여유와 절제된 해석. 그러한 해석은 고난이도의 테크닉을 완벽히 소화해내는 기술적 베이스가 깔려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김정원은 그 속에서 절대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 연주자와 작곡자가 일치되어가는 그 사이에 자신의 개성을 녹여 그 만의 새로운 쇼팽으로 이 에튀드를 다시 살려낸 것이다. 커다란 스케일 속에서 유유히 흐르는 선율과 호소력있는 인토네이션. ‘외유내강’ 과 ‘외강내유’ 를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타건. 총 24개의 장면에서 그는 매 번 새로이 옷을 갈아입으며 다른 배우로 변신하고 있다.
◀쇼팽 피아노 음악의 진수, 24개의 에튀드
쇼팽의 연습곡이 피아노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높다. 그는 ‘연습곡’이라는 장르를 단순히 손가락 연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아름다운 낭만성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굽이치는 시적인 장르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이들 작품이 낭만주의의 이와 더불어 연습곡이라는 본래의 목적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전까지는 불가능했던 혁신적인 테크닉을 계발시켰다. 쇼팽은 Op.10과 Op.25 두 개의 작품을 차례로 작곡하여 총 24개로 구성된 새로운 피아노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연습곡 Op.10이 작곡된 것은 1827년 8월부터 1832년 봄으로서, 당시 피아노계의 지존으로서 유럽 무대를 평정했던 프란츠 리스트에게 헌정되었다. 이 작품은 쇼팽이 10대를 뒤로 하고
20대로 막 접어들었을 때로서, 빈에서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갖고 바르샤바에서의 데뷔도 무사히 마친 시기였다. 당연히 그는 작곡가겸 피아니스트로서 리스트와 같은 명성이 자신에게도 올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을 당시였다. 이러한 자신감은 그의 음악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이토록 혁명적이고도 혁신적인 피아노 음악을 작곡하게 된 동기로 작용했다.
‘이별의 곡’ 이라는 부제로 더 유명한 3번E장조(Track 3). 애잔한 멜로디가 흐르는 전반부와 감7도로 전개되는 화음들이 낭만적으로 펼쳐지는 이 곡에서 김정원은 아름다운 주선율을 한껏 노래하지만, 결코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살린 깔끔한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 조국 폴란드 혁명군의 패배와 바르샤바의 함락 소식을 접한 쇼팽의 분노와 들끓는 애국심을 표현한 곡으로 유명한 왼손의 아르페지오를 위한 연습곡인 12번 C단조 (Track 12) ‘혁명’ 에서는 첫 음부터 타악기인 피아노의 특성을 살려 강렬한 액센트로 기선을 제압한다. 드라마틱한 크레센도와 역동적인 악상의 변화가 쇼팽의 혼란한 감정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Op.10이 작곡된 후 발표한 20대 초반에 작곡된 연습곡인 op. 25는 1832년부터 1836년에 걸쳐 작곡된 것으로서 리스트의 연인으로 알려진 다구 백작부인에게 헌정되었다. 이전 Op.10에 비하여 한층 원숙하고 다채로워진 음악 작법이 인상적이다.
1번 A플랫 장조 ‘에올리아의 하프’ (Track 13), 는 양손의 아르페지오를 마치 하프의 주법처럼 잔잔하게 구사하며 시적인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는 김정원의 연주가 돋보이며 9번 G플랫 장조 ‘나비’ (Track 21) 에서는 나비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듯 사뿐사뿐 처리하는 오른손의 스타카토와 레가토를 통해 리드미컬하고 경쾌하게 해석해 내고 있다. 그리고 이 앨범의 마지막 곡인 12번 C단조 ‘대양 연습곡’ (Track 24) 에서는 차갑게 건반을 거칠게 휩쓰는 남성적인 아르페지오의 선율로 커다란 스케일을 그리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24개의 짧지만 개성있는 곡들에서 그는 음악적 원근감을 살려 입체적인 쇼팽의 피아니즘을 구현해 내었으며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았을 때도 통일감과 균형감을 잃지 않은 구성을 통해 듣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음악적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9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Philippe Guisiano가 카리스마와 자연스러움이 함께 살아있다고 극찬했던 그의 연주. 김정원의 이번 앨범은 이러한 쇼팽 스페셜리스트로서의 그의 면모를 청중들에게 각인시킴과 동시에 한국 피아노 음악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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