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델리 스파이스
그들이 떠나는 여섯번째 여행 <bombom>!!
델리 스파이스가 돌아왔다.
90년대 중반, 척박했던 한국 대중음악계에 외로이 모던락의 씨를 뿌린 이후, 10년 동안 인디씬과 가요계 사이에서 끊임 없는 실험을 거듭해 온 모던락의 선구자 델리 스파이스가 오랜 동면 끝에 6집 <bombom>을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90년대에 출발한 밴드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멤버교체 없이 꾸준한 작품활동을 펼치며, 드디어 정규앨범 여섯번째를 선보이는 델리 스파이스, 그들은 이제 "무얼 위해 노래하고, 어딜 향해 달리고" 있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 들여다 보도록 하자.
공백기가 길었다는데?
영화 "클래식"에 삽입되면서 더 유명해진 노래 "고백"이 담겨 있던 5집 <에스프레소> 활동 이후, 델리 스파이스는 긴 동면에 들어간다. 음악적 재충전과 각자의 프로젝트 활동으로 보낸 이 기간동안 김민규는 "스위트피"로, 윤준호와 최재혁은 "오메가3"로 델리 스파이스 안에서 미처 드러내지 못했던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각개약진을 펼친다. 비록 델리 스파이스의 이름은 아니었지만 매년 한장씩의 앨범은 발표한 셈.
게다가 지난해 여름에는 밴드 결성 10주년을 맞아 기념공연으로 전국 투어를 갖는 등 바쁜 나날을 보냈는데, 결국 델리 스파이스의 역사 10년이 한국 인디음악 10년의 발자취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감안한다면, 이번 여섯번째 앨범 <bombom>의 음악적 행보가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왜 <bombom>인가요?
얼핏 보면 김유정의 소설을 연상시키지만 실은 전혀 무관한 단어 "봄봄"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다. 차디찬 겨울을 견디고 다시 찾아올 따스한 봄날을 기다리듯 간절히 바라는 어떤 시간, 혹은 간절히 원하는 어떤 장소이다. 봄은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유토피아다. "꽃잎 날리는 길을 따라" 찾아가고픈 낙원 "시아누크빌"이며, 하염없이 "missing you"하는 "바다에 던져버린 이름들"이다. "로렐라이"의 선율을 쫓아 마냥 어디론가 떠나고픈 염원이며 동시에 "누구도 간 적이 없는 붉은 미래"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가올 미래의 끝은 어디인지" 조바심을 내고 "내게 봄이 오지 않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 한다.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현실에서 찾다 보면 "녹슨 총, 굽은 손, 못 박힌 왼발로 무얼 할 수 있는지" 몰라서 주저 앉기도 한다.
앨범 쟈켓의 사진 속 배경은 어디인가요?
그래서일까? 이번 앨범에는 "떠남"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손꼽아 그리워 하던 "봄으로의 여행"을 통해 현실이 말해주지 못한 해답을 구하고 있다. 이러한 의지의 반영인지는 모르지만, 앨범 쟈켓 속 멤버들의 모습은 낯선 여행지에서의 얼굴을 담았다. 캄보디아의 불가사의한 유적 "앙코르와트"와 베트남의 "하롱베이"등을 다니면서, 시간이 멈춘 듯한 묘한 경험과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담담하게 카메라로 스케치했다. 음악을 들으며 사진 속의 색다른 세상을 들여다 보는 재미도 느껴 보면 어떨까.
앨범 제작과정은 어떠했나요?
공백이 길었던 만큼 들려주고 싶은 얘기도 많았던 걸까. 델리 스파이스는 무려 30여곡의 데모를 모은 후 최종적으로 엄선된 12트랙을 들고 스튜디오로 향한다. 그렇다고 표현상의 과장된 욕심이나 화려한 치장이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은 금물. 오히려 담담하고 솔직한 자연스러움과 여유로움이 묻어 난다. "그 어느 앨범보다도 편안하고 부담없는 상황에서 노래 녹음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멤버들의 말처럼, 세월만큼이나 한층 더 무르익은 목소리를 들려 준다.
어느 창작물에나 해산의 고통은 따르는 법. 기나긴 스튜디오 작업이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급할 수록 돌아 가자는 마음으로 연주하는 음표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썼다고 한다. 믹싱과 마스터링같은 후반작업도 다시 수정하는 일이 많아졌고 그 덕분에 앨범은 예상보다 많이 늦게 나오게 되었지만, 나중에 들어도 후회하는 일이 적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세심한 작업이 가능했던 것에는 고마운 조력자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특히 자신의 음반을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언제나 녹음실의 든든한 진행자가 되어 주었던 슬로우준의 도움이 컸고, 2집 이후 다시 참여하게 된 하세가와 요헤이의 기타, 그리고 오메가쓰리에서 멤버들과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는 고경천의 키보드, 공연세션으로 늘 함께 하는 이찬형 등은 이번 앨범을 더욱 빛내 주고 있다.
<bombom>에는 어떤 노래가 담겨 있나요?
"봄봄"은 자유롭고 편안하고 솔직하다. 델리스파이스의 음악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무게를 벗어 버린 듯, 꾸미지 않은 감성을 고스란히 담았고, 구체적인 사랑얘기와 비현실적인 스토리가 거침없이 공존하고 있다. 다양한 악기소리에게 살짝 자리를 내어 준 기타는 여유롭고 탄력적이며, 때로는 과감하게 소리지르기도 하는 베이스가 인상적이고, 더욱 리드미컬해진 드럼이 믿음직스럽다. 간혹 선보이는 음악적 외도도 무척 흥미롭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