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보컬리스트 '사토신지'의 안타까운 죽음 이 후 지금까지도 수많은 뮤지션과 아티스트 그리고 젊은이들로부터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피쉬만스'. 이들이 만들어낸 하이브리드 사운드는 자연스러우면서 동시에 노골적이어서 그들 이후로는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음악으로 90년대를 장식했다. 인생의 핵심에서 울리는 몽환적 사운드라 평가 받는 '피쉬만스'의 음악은 레게, DUB, ROCK음악을 기반으로 하여 PUNK, HIPHOP, ELECTRONIC 등 가능한 모든 음악 장르들을 뒤섞으면서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피쉬만스'가 공중 분해된 후의 세상에 남겨진 이들이 '피쉬만스'를 대신할 유일한 탈출구로서 '피쉬만스'의 베이시스트였던 가이와바아 유즈루가 있는 '폴라리스'를 선택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랩라이프'의 오야 유스케와 '피쉬만스'의 베이시스트 가시와바라 유즈루가 주축이 되어 2000년에 결성된 '폴라리스'는 '피쉬만스'를 가장 완벽하게 계승한 밴드로 인정 받고 있으면서도 그들만의 음악세계를 동시에 구축하며 '피쉬만스'의 후광을 벗어나 '폴라리스'만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특히 세계 최고라 할 만한 그루브를 들려주는 가시와바라 유즈루의 베이스라인과 오야 유스케의 동화적이고 섬세한 멜로디 그리고 그의 맑은 음성은 순수함과 함께 강한 중독성 있는 음악을 만들어 냈다.
'폴라리스'의 결성은 그 자체만으로 일본 라이브 클럽씬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결성을 기념하여 가졌던 작은 클럽에서의 한정 입장 공연에는 입장 가능 수용 인원의 15배가 넘는 인원들이 들어가기 위해 몰렸으며, 입장하지 못한 이들은 클럽 입구에서 그들의 음악을 듣기 위해 진을 치기도 했다. 매 공연이 진행될 때마다 한정 입장의 인원을 늘려나갔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폴라리스'의 공연을 보기 위해 더 많이 몰려들었고, 각지의 매체들은 그들의 공연을 대서특필하였다. 그리고 2001년 역시 한정입장 공연이 있던 4월의 어느 밤에 엔지니어에 'ZAK', PA에 '니시카와 이치조' 를 맞이한 공개 라이브 레코딩이 있었고, 이 밤은 '폴라리스'와 그들의 팬에게 영원히 기억될 전설의 밤으로 현재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이 밤의 기록은 '폴라리스'의 첫 번째 라이브 앨범으로 세상에 나오게 됐으며, 이 앨범은 1,000매 한정판매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각종 인디즈 챠트 1위에 오르며 '폴라리스'의 순조로운 출발을 세상에 알렸다.
또한, 같은 해 7월에 녹음을 시작해 완성된 미니앨범 "POLARIS"는 라디오 방송 차트에 상위권을 차지하며 점점 팬층을 넓혀갔으며 그 후 '에고래핑', '리틀템포'등과 함께 한 앨범 발매 공연에서는 "몇 년간 본 라이브 중 가장 충격적!"이라는 평단의 호평을 얻어냈다.
2002년 아직 정규앨범을 내기도 전임에도 불구하고 토쿄와 오사카에서 있었던 대규모의 공연에는 한국과 홍콩에서까지 팬들이 몰려와 전 회 매진이라는 기념을 토했으며, 후지락 페스티발과 ROCK IN JAPAN 페스티발에 동시에 초청 받는 등 앨범데뷔를 아직 하지 않는 그룹에게는 없었던 이례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11월 이렇게 공연으로 먼저 소개되고 다져진 그들의 음악은 "HOME"이란 제목의 첫 번째 정규앨범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 앨범은 2005년 드디어 한국에 정식으로 그것도 두 곡의 보너스 트랙이 더 들어간 한국 특별 보너스 앨범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KING CRIMSON의' "I TALK TO THE WIND"와 "HOME"의 타이틀 트랙이긴 하지만 10분이 넘는 플레이 타임 때문에 듣기 힘들었던 <光と影>의 라디오 에디트 버전은 '폴라리스'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매 공연마다 관객들을 몽환의 패닉 상태로 몰아넣는 '폴라리스'. 한국에서의 정식 음반 발매와 함께 그들의 멋진 라이브도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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