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발매되는 일본 Neo-Aco 황금기의 기록
시부야계 음악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시부야계의 바이블!
* BRIDGE에 대한 진지한 고찰
브릿지는 재평가 되어야 마땅하다. 언젠가부터 음악 애호가들의 콜렉션 중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된 시부야계를 거론함에 있어 등장하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나열 속에서 브릿지는 그냥 한 두번 등장하는 서브 옵션 정도로만 평가 받았다. 지금도 분주히 활동 중인 시부야계의 로맨티시트 카지 히데키가 몸담았었고, 시부야계의 수퍼 스타인 코넬리우스가 애써 밀어준 밴드 정도로만 알고 있는 매니아들 이라면 그 머리 속에서 브릿지는 시부야계의 시작, 황금기, 현재를 잇는 시제이자 중요 인자로 새로이 각인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많은 얘기들을 유심히 체크하다 보면 80년대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크고 작은 시부야 씬의 흐름은 브릿지와 직, 간접적으로 명백하게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부야계의 프론티어였던 Flipper’s Guitar(최고의 송라이터 오자와 겐지, 지금은 코넬리우스가 된 오야마다 게이고 등 2인조로 구성)의 해체 후 오야마다 게이고가 출범한 수퍼 레이블 Trattoria(트라토리아)는 가능성 있는 신진 밴드들을 픽업하며, 거대한 왕국을 만들 채비를 했다. 당시 스톤 로지즈와 해피 먼데이즈를 앞세워 전세계를 휩쓸었던 맨체스터 사운드를 일본에 선보인 독보적인 밴드 Venus Peter(비운의 천재 뮤지션 오키노 순타로와 K.O.G.A. 레이블의 사장이 된 베이시스트 코가가 속해있었다)가 트라토리아의 진보주의를 대표했다면, 플립퍼스 기타의 맥을 이은 팝 적인 코드를 보여준 팀이 바로 브릿지이다. 어찌 보자면 단 2장의 정규 앨범 발표와 3년간의 굵고 짧은 활동을 펼친 후 전격 해체를 결정했다는 점에서 플립퍼스 기타의 전철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오야마다 게이고가 만든 플립퍼스 기타의 리바이벌처럼 비춰졌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 브릿지는 커다란 2가지 측면에 있어 일본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중요한 개체로 인식되어야 한다.
첫번째, 시부야계의 맨 파워는 브릿지로 통한다는 사실. 멤버 개개인 별 설명과 팀의 역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8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시부야계를 선도한 인물과 밴드는 거의 대부분 브릿지와 연관을 맺고 있고, 브릿지의 멤버들이 주도한 부분이 크다. 음반을 별도 발매한 아티스트 영역뿐 아니라 앨범 세션, 라이브 멤버, 프로듀서, 앨범 재킷 디자인, 각종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손길이 뻗치지 않은 곳은 없다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80년대 말 플립퍼스 기타를 필두로 쏟아져 나온 Neo-Aco 1세대 이후, 90년대 초 중반 Neo-Aco 2세대 황금기를 주도한 대부분의 밴드가 브릿지 혹은 브릿지의 멤버들이 사이드 밴드로 결성한 팀들이었다. 특히 시부야계의 프리미엄급 뮤지션이라 할만한 카지 히데키와 시미즈 히로타카가 밴드의 양축으로 함께 활동했었던 점은 주목할만하다. 보통 카지는 불(火)로 시미즈는 물(水)로 비유들을 많이 했는데, 이는 평소의 음악적 접근 방법이나 성격에 기인하는 바가 컸다. 여하튼 초기, 다른 멤버들과 비중이 비등하던 시절을 넘어, 둘의 참여도가 확연히 늘어나면서 리더쉽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대립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 여기서 잠시 Neo-Aco의 설명을 좀 하자면, 기타팝이라는 단어와 짝을 이뤄 사용되는 용어로 어쿠스틱 록, 시부야계 등이 혼합된 당시의 컬리지 컬쳐를 지칭하는 의미이다. 어쿠스틱한 악기 사용이 많은 약간의 복고성을 담은 모던한 기타 팝들로 Aztec Camera, Patels, Velvet Crush, Lloyd Cole, The La’s, Prefab Sprout, Orange Juice, Smiths, Teenage Fanclub, Matthew Sweet 등이 영향을 준 대표 뮤지션으로 거론할 수 있겠다. 장르라기 보다는 경향이라 볼 수 있다. -
두번째, 유행과 경향을 선도했다는 것. 잘 알려진 대로 브릿지는 훗날 전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게 된 스웨디쉬 팝을 일본 내 가장 먼저 선보인 팀이었다. 브릿지의 시도와 서포트가 있었기에 카지 히데키, Bonnie Pink, 하라다 토모요, Hal, Jenka 등 수많은 일본 뮤지션이 스웨디쉬 팝이라는 장르를 앞세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또한 대학교 서클 밴드 스타일의 설익은 큐트팝(Cute Pop)도 브릿지가 선보인 스타일. 적당한 음높이의 친근감 넘치는 멜로디, 팬시한 이미지, 그리고 아이비 리그 풍의 편안한 패션은 훗날 수많은 네오 시부야계 밴드들의 롤모델이 됐으며, 스페인의 La Casa Azul 같은 팀의 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의 데뷔 앨범만 놓고 보았을 때 느껴지는) 아코디언을 앞세운 포크/컨츄리에 카랑카랑한 여성 보컬이 접목된 사운드는 Flamenco a Go Go(현재까지 활동중인 Petty Booka의 전신), Puffy, Cherry’s 등에게도 적잖은 귀감이 됐던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도 서구적인 팝 음악을 혼성 밴드가 함께 어우러져 노래하고 연주한다는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매우 생경한 풍경이었다.
* 봄 내음이 물씬 풍겨나는 데뷔 앨범 Spring Hill Fair
브릿지의 1993년 3월에 발매된 데뷔작 “Spring Hill Fair”는 당시 일본 대학가에 열병처럼 번지던 Neo-Aco의 기운이 충만한 작품이다. 잘 짜여진 프로페셔널의 느낌보다는 덜 다듬어졌지만, 친근함이 듬뿍한 컬리지 뮤직의 전형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 자신들과 본작을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단어들(Sugar, Corn Syrup… Coloring, Pop Songs, Good Guitars, Good Melodies, Cute Voices)을 앨범 뒷면에 식품 성분처럼 주욱 나열하고 있는데, 바로 이 단어들이 주는 심상이 브릿지가 담고 있는 생각과 방향성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사실 본작은 1989년 팀이 결성되었을 당시부터 작업했던 곡들을 모아놓은 것이기에 브릿지의 초기 곡 모음집의 성격으로도 볼 수 있겠다. 초기 브릿지는 연장자이자 여성 멤버인 오오토모와 이케미즈의 입김이 컸던 편이기에 아기자기하고 여성적인 취향이 강하다. 소위 브릿지의 리더격으로 알려진 카지 히데키와 시미즈 히로타카는 1집의 경우 20% 정도씩의 상대적으로 적은 곡 참여율을 보였다(허나 2집에서는 이 두 명의 역할이 크게 부각됐고, 리더 자리를 둘러싼 신경전이 결국 팀 해체의 단초로 작용하게 됐다. 그렇기에 바꿔 설명하면 1집은 멤버들의 힘의 균형이 가장 고른 앨범이었던 셈이다).
‘일본에서 스웨디쉬 팝을 본격적으로 들고 온 대표주자’라는 평가 만큼이나 충만한 멜로디와 선이 고운 편곡이 잘 녹아있다. 플립퍼스 기타의 1집에서 들을 수 있었던 듣기 편한 롤리팝 사운드가 요소요소 등장하며, 다소 이색적인 컨츄리, 포크 등의 요소도 첨가된, 기본적으로는 기타팝 사운드에 충실한 앨범이라 하겠다(초기 발매 반에는 가라오케 CD가 보너스로 수록되어 팬들의 싱어롱을 도모하기도 했을 정도로 쉬운 곡의 구조를 갖고 있다).
‘Neo-Aco. Selection’이라는 마크와 ‘오야마다 게이고 프로듀서’라는 글씨를 앨범 재킷에 크게 붙여 프로모션을 했을 만큼 당시 이 단어들이 갖고 있는 음악 씬에서의 무게는 상당했던 것으로 추측되며, 당시 영미권 팝의 새로운 고찰 속에 붐을 이루던 ‘영어 가사로 노래부르기’가 전편에 걸쳐 이루어져 있다.
어쿠스틱 기타와 아코디언 사운드가 돋보이는 유쾌한 트랙 <Windy Afternoon>은 브릿지의 정식 데뷔 싱글곡으로 현재까지도 브릿지의 팬 사이트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그들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제목으로 사용되고 있다. “Motorcycle Angel”은 브릿지가 밴드 결성 후 처음으로 작업한 곡(일본식 스웨디쉬팝의 시발점으로 기록). 앨범 후미에 있는 보사노바풍의 “Puppy Love”와 건반 연주를 앞세운 “Better Days”는 브릿지의 팬들이 손꼽는 애청곡으로 산들거리는 봄바람처럼 가볍고 상쾌한 느낌이 강한 트랙들.
트라토리아 레이블의 수장이자 커넬리우스로 더 잘알려진 오야마다 게이고가 직접 프로듀서를 맡았던 본 작은 본인이 몸담았던 플립퍼스 기타에 대한 추억과 동시대 영미권의 기타팝(Aztec Camera, Velvet Crush, Pastels…)들에 대한 오마주를 나타낸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번 한국에 발매되는 브릿지의 데뷔 앨범은 ‘디자인 파일 보존이 잘 안되었고, 디자인의 시기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원작자의 요청에 의해 새롭게 제작된 디자인을 담아 발매되는 코리아 에디션이다. 일본 Polystar(Trattoria 레이블의 배급사) 담당자의 검수 아래 해피 로봇 레코드가 직접 촬영, 디자인하여 전세계 브릿지 팬들에게 일종의 콜렉터스 아이템이 될 수 있는 앨범으로 완성했다.
본작에 이어 브릿지 2집과 카지 히데키의 베스트 앨범 역시 코리아 에디션으로 발매될 예정이라고 하니, 일본 시부야계와 Neo-Aco의 전설적인 자료들을 계속하여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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