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세는 시부야계 인 것일까요. 요즘 쏟아지듯 발매되는 시부야계 음악들 속에 lamp의 발매소식은 참으로 반갑기만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첫 번째 앨범인「そよ風アパ?トメント201」와 두 번째 앨범 인「?人へ」이 두 앨범 모두가 릴리즈 된다니 말이지요!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심정으로 조금 싫증이 날 참이었거든요. ‘시부야’라는 단어가 너무나 진부해져 버리고 그 정의가 모호해져 버린 탓일까요?
물론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듣는 시부야계도 좋고 천장이 아주 높은 멋진 인테리어를 한 카페에서 카푸치노와 함께 하는 라운지도 좋아요, 하지만 결국 언제나 마지막에 고르게 되는 곡은 아주 세련되지는 못해도 마음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따뜻한 감성의 곡 이였어요. 거기에 ‘론리 피플’들이 갈구하는 로맨티시즘이 첨가되어있다면 더욱더 바랄게 없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한없이 풋풋하기만 해도 금세 질려버리지요, 너무 말랑하고 지나치게 달콤하기만 해도 그렇구요. 저에게 있어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은 그룹은 ‘서니데이 서비스’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해체하고 리더였던 소카베 케이치의 솔로앨범이 해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락킹해지고 있는 요즘, 2003년에 발매된 Lamp의 데뷔 미니 앨범인 ‘산들바람 아파트 201호’ 라는 타이틀을 보는 순간 뭔가 좋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네 예감은 적중했지요. 타이틀처럼 너무나도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그야말로 봄날의 산들바람 같은 음악을 들려주었거든요.
79년생 동갑내기인 기타의 ‘소메야 타이요’와 보컬과 아코디언,플루트의 ‘사카키바라 카오리’, 그들보다 한 살 어린 보컬과 베이스의 ‘나가이 유스케’. 이들이 만들어내는 Lamp의 음악은 그저 풋풋한 기타팝으로 단정지어 버리기엔 너무도, 그들이 영향을 받고 존경한다고 말하는 뮤지션들에게 받은 영감이 묻어 납니다.
Stevie Wonder, Carole King, Ivan Lins, Simon & Garfunkel, Michael Franks, Leroy Hutson, 오자와 켄지 …. 79,80년생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멋진 취향이지 않나요? 이들은 씨티 팝, 소프트 락, AOR, 보사노바에 이르는 여러 장르를 흡수하여 Lamp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언뜻 서니데이 서비스의 소카베 케이치를 연상시키는 마일드한 유스케의 보컬과 청아한 목소리의 카오리의 멋진 하모니도 Lamp만의 오리지날리티를 단단히 다져주고 있지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Lamp의 가사에는 자주 반복되는 코드들이 있어요. 계절, 풍경, 날씨에 관한 묘사들이지요.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날, 마음속은 뻥하고 뚫어진 것만 같고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현기증이 날 것 같았던 날에 주위의 변함없는 풍경들과 그날의 차가웠던 혹은 뜨거웠던 날씨만은 머릿 속에 생생히 남아있던 경험이 혹시 있으신지요? 그런 경험이 있는 당신이라면 가사를 보는 순간 ‘아…’하는 작은 한숨이 나와버릴지도 몰라요. 비 오는 날에 무척 잘 어울린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구요. Lamp의 음악은 그들과 같이 90년대를 통과해온 분들이라면 더더욱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 명이 어떻게 해서 Lamp라는 그룹을 만들게 되었는지, 기타를 담당하고 총 프로듀서의 입장에 서 있는 소메야씨은 이렇게 얘기를 하는군요.
“나가이를 만난 건 제가 고등학교 2학년 이였던 4월, 한 학년 아래의 그가 제가 소속되어있는 포크송 동호회에 들어왔을 때 입니다. 비틀즈나 사이먼 앤 가펑클을 좋아한다는 것에서부터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은 기억이 나네요. 그 후 저는 자신의 음악활동에 나카이를 권유해서 함께 해오게 됩니다. 대학에 들어가자 저와 나가이, 둘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저는 함께 음악을 할 친구를 찾게 됩니다. 그렇지만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음악을 하는 정열 같은 것이 조금은 식었던 게 바로 이 시기입니다.
2000년 제가 대학 2학년 이였던 겨울, 여전히 추웠던 1월의 마지막 날 급작스러운 전개로 저와 나가이와 카오리 이렇게 3명이 밴드를 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날 저는 그 당시 빠져있던 보사노바나 소프트록, 모즈록의 좋은 점을 알게 된지 얼마 안되어 AOR 등등 좋아하는 곡을 저 나름대로 편집해서 카세트 테이프를 가지고 고교시절의 친구의 집에 놀러 갔어요. 저는 친구에게 ‘나랑 음악의 취미가 맞을 것 같은 사람으로 노래할 수 있는 사람 누구 알어?’라고 말하자 그 친구는 플륫이나 아코디언을 가지고 있고 노래도 할 수 있는 녀석을 알고 있어’라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를 걸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바로 저희들이 있는 그 친구의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게 사오리씨 였어요. 가볍게 얘기를 하고 그녀의 취미와 특유의 분위기에 굉장히 호감이 가서 저는 사오리씨에게 나가이라고 하는 재능 있는 녀석을 알고 있으니까 꼭 같이 음악을 하자고 권유했습니다. 사오리씨는 망설임 없이 답변을 해줬습니다 저는 굉장히 기뻐서 집으로 돌아가 나가이에게 전화를 해 사오리라는 여자아이와 3명이 밴드를 엮을 뜻을 설명하고 나가이에게서도 ‘좋아’ 라는 간단한 답변을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3명이 만난 건 그 다음날 2월6일, 저의 집에서 사이먼 앤 가펑클의 ‘feelin’ groovy’와 가제조차도 붙이지 못한 제가 만든 오리지날곡을 3명이 멀티트랙레코드에 녹음했습니다. 이 3명이 밴드를 엮게 된 일이 저의 음악활동을 기대감과 희망으로 가득 차게 해 주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오리지날 곡도 3곡 정도였기 때문에 그 기분 탓인지 그 후 계속해서 곡이 완성되어갔습니다.
결성해서 최초 1년은 저의 집에서 노래하거나 3명이서 함께 밥을 먹으러 가거나 서로 시디를 교환해서 듣거나 음악활동을 도와줄 사람을 찾거나 하며 활동다운 활동은 거의 한 기억이 없네요.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1년을 보낸 것으로 인해 저희들 3명의 음악의 취미나 센스가 좋은 느낌으로 합해져 정리된 기분이 듭니다. 제가 처음으로 라이브를 한 것은 2001년 1월로 밴드 결성으로 약 1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당시 니시아자부에 있었던 (지금은 록폰기에 있습니다) ‘magnacy’라고 하는 작은 바의 마스터에게 저희들의 음원을 들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