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중음악에 대해 지난 10여년간의 흐름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Bassist 강기영이라 하면 어렵지않게 그 궤적을 추적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Heavy Metal 진원지로서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던 그룹 시나위의 Bassist로서 아직도 한국 Heavy Metal의 최대 명반으로 꼽히는 시나위 2집부터 그 음악적 역량을 세간에 펼치기 시작한 이후로 현재 붐을 이루고 있는 소위 Modern Rock을 이미 시작하였으며 그 이상의 음악적 실험을 보여준 H2O와 현재 새삼스레 매니아들의 추적을 받는 컨셉트 앨범 H2O 3집. 그리고 90년대 최대 Rock문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삐삐밴드에서 요즘의 언더와 오버를 넘나드는 다양한 Rock Band의 폭 넓은 표현방식의 가능성을 열어보인 삐삐 롱 스타킹까지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의 음악 행로이다.이러한 그의 음악 활동의 궤적을 뒤짚어 보면 새삼 그가 얼마나 감각적으로 앞선 아티스트인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렇듯 알게 모르게 적지않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보여온 강기영은 삐삐밴드2집에서부터 '달파란'이란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Techno를 조금씩 선보이기 시작했다. 삐삐 롱 스타킹 해산이후 그는 베이스 기타를 완전히 놓고 본격적인 Techno Artist로서의 집요한 탈바꿈의 시간을 지내 왔다.영국과 일본을 오가며 Techno Club들을 섭렵하였고 DJ로서 국내 클럽에서도 주말마다 활동을 하고 있다. Techno에서 DJ란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과거 음악 감상실에서의 DJ처럼 단순히 명곡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비닐 음반(LP)과 턴테이블을 이용한 새로운 연주 차원에서의 아티스트이므로 Techno 뮤지션에게 있어서 DJ 활동이란 필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 Rock Bassist 강기영은 Techno DJ 달파란으로 완전히 변모했다. 사람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그의 과거를 돌아 보라는 말이 있다. 강기영이 지금까지 제시했었던 음악은 처음엔 항상 생소했고 주류에서 동떨어진 음악으로 여겨 졌으나 그것은 결국 주류의 가장 큰 영향력 있는 음악으로 파고 들고 다른 뮤지션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 사실이라면 DJ달파란으로의 변모와 그가 제시하는 Techno가 앞으로 국내 대중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Techno. 21세기를 예견하는 음악.
Techno가 몰려온다. 전 세계적으로 Techno 붐이 일고 있고 국내에서도 스타급 아티스트부터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에 이르기 까지 그 움직임이 점점 커지고 있다. Techno는 사실 그리 급작스럽게 대두된 생소한 음악이 아니다. 이미 20여년 전에 독일의 Kraft Werk의 Radio Activity가 히트를 하면서 국내의 라디오에서도 심심찮게 흘러 나왔고 이후로 뉴웨이브나 디스코, 그리고 근래의 댄스음악 들을 따라 직,간접적으로 들려졌었고 발전을 해 왔다.(사실 Techno라는 것은 House, Drum & Bass, Trip-Hop, Trance, Techno 등으로 세분화 되는 전자음악속의 한 장르 또는 스타일이지만 여기서는 이 모든 전자음악 장르를 통칭해서 Techno라고 부르기로 한다.) 근래에 영화 Train Spoting을 통해 프로디지와 케미칼 브라더스등 슈퍼스타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Techno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수많은 Techno 아티스트들의 등장과 함께 U2같은 Rock의 전설적인 밴드가 최근에 Techno로 전향한 사건은 Techno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Techno가 갑자기 붐을 이루고 많은 뮤지션들이 Techno로 전향을 하는가?
지금 우리는 20세기가 끝나가고 새로운 세기가 몇일 남았는지 계산할 수 있을 만큼 코앞에 21세기를 앞두고있다.20세기의 모든 이데올로기는 막을 내렸고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총체적으로 칭하는 문화의 혼란 속에서 더 이상의 시대적 철학이나 이슈는 설득력이 없게 되었다.산업혁명이나 세계 대전들, 그리고 살벌한 냉전시대 들을 거쳐오면서 언제나 그 시대를 지배하는 집단적 이데올로기가 있었고 그것은 대중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쳐왔지만 지금은 사상적 이념과 민족의 대립보다 개인의 상상력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창작의 형태가 집단적 공동 이슈로 뭉치고 공동 작업을 가장 큰 미덕으로 삼던 Rock Band위주의 문화에서 이제는 개인의 상상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 될 수 있는 Techno로 그 비중이 옮겨가는 것이다.사실 냉전시대가 끝나고 동,서독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기점으로 하여 새로운 Rock음악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90년대 가장 큰 파장을 보였던 얼터너티브와 너바나는 70년대 Punk의 재 해석이었으며 오아시스로 대표되는 모던 록은 비틀즈로의 복고라고 분석할 수 있다.
더 이상 새로운 Rock음악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앞서 말한대로 공동의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던 시대를 벗어 났기 때문이다.이제 아티스트들은 공동작업의 한계를 넘어서서 자신이 꿈꾸는 비젼을 혼자서 거의 완전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Technology를 갖추고 화가나 시인처럼 개인의 상상력을 펼쳐 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Techno는 음악이라는 장르가 분업된 공동작업의 형태에서 미술이나 문학처럼 개인 작업으로 차원을 달리하게 된 것이다.또한 메시지 전달로서의 가사의 비중이 거의 소멸하고 드라마틱한 변화보다는 미니멀한 리듬 위주의 Techno가 각광을 받는 것도 시대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소위 인정 받는 Bassist에서 Techno로의 전향은 시대적 변화를 세밀하게 체감한 단호한 결단이라고 보아지며 그것은 단순한 Musician에서 Artist로의 진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근래에 국내에서도 Techno라는 장르를 표방한 음반이 간헐적으로 시도 됐으나 외국의 경우처럼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지기 어려운 것은 국내의 음악계가 방송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상황에서 노래 위주의 음악과 안방에서 감상 가능한 음악만이 선호되는 풍토 때문이기도 하다. Club이나 Party문화가 생활의 일부로 존재한다면 Techno는 보다 자연스럽게 생활 속의 음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농악이나 강강 수월래가 우리의 놀이 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음악 수단이었던 점을 돌이켜 본다면 우리의 놀이 문화에 있어서 Techno란 사실 그 어느 나라보다 체질적으로 밀접함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시대 이후 단절된 우리의 놀이 문화와 축제 문화가 부활 하는 미래에는 그 시대에 맞는 놀이 음악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지금 현실적인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Techno 음악을 시작하고 만들어 가는 아티스트들은 그러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Techno라는 이름의 우주선을 타고 떠나는 휘파람 별로의 신나는 우주여행.
지구를 떠난 우리는 무한한 우주를 여행하게 된다. 알 수 없는 수수께끼와 신비로움과 미지의 진리들이 가득 차 있는 우주 공간을 떠돌다 우리는 휘파람 혹성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는 비닐로 이루어진 생명체가 단순한 논리로 살아가고 있었다.그들의 삶은 오로지 휘파람을 불며 언덕을 넘는 것이었다. 슬픔과 좌절도 없었고 고통과 번민도 없이 기쁨의 휘파람만을 불며 모두가 언덕을 넘어가는 것이 그들의 삶의 모든 것이었다. 휘파람을 불며 언덕을 넘을때는 오직 기쁨과 환희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휘파람을 불며 언덕을 넘는 기쁨, 그것이 그들의 삶의 목적이요,인생이요, 현실이고 논리였다.
과거에는 슬픔과 고통, 혼돈이 있었지만 모두가 휘파람을 불며 언덕을 넘기 시작한 이후로는 모든 혼돈이 사라지고 해탈과 같은 기쁨을 알게 되었단다. 우리는 휘파람 별의 외계인들의 언덕을 넘는 행진을 따라 함께 휘파람을 불며 언덕을 넘기 시작했다.그러자 우리는 이제까지의 모든 근심 걱정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휘파람을 불며 가자 언덕을 넘어."
이 동화 같기도 하고 SF같기도 한 짧은 이야기는 달파란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음악에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상상해 낸 이야기이다.그러나 기존의 음악들 처럼 나레이션이나 가사를 통해 이런 내용을 들려 주진 않는다.자신이 만들어서 들려 주게 될 음악들이 휘파람을 불며 언덕을 넘는 행진 속에서 기쁨을 느끼듯 그렇게 사람들에게 작용하기 바라는 마음을 Techno라는 음악 속에 반영한 것이다. 휘파람을 불며 언덕을 넘어가면 기쁨이 넘친다는 이 터무니없이 단순한 논리가 어쩌면 지금 우리의 너무나 복잡하고 불안한 삶에 정말로 필요한 신바람 건강법 일지도 모른다. 강요되는 메시지도 없이 다그치는 비판의 목소리도 없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복잡하디 복잡한 논리들을 쿵짝쿵짝쿵짝쿵짝 행진하는 리듬을 따라 모두 훌쩍 뛰어 넘어 새로운 세계를 향한 행진을 제안하는 것이다.이것은 지금까지 지배적이었던 서구의 논리적 사고를 벗어나 동양적의 초월적 사고 체계로의 회귀를 암시 하고 있기도 하다.
DJ 달파란의 첫 솔로 음반 [휘파람 별]은 총 13곡의 다양한 유형의 Techno를 들려 주고 있다 (CD 13곡. MC10곡)이 음반 작업은 대부분 Techno Artist가 그러하듯 혼자서 작곡은 물론 프로그래밍, 시퀀싱,연주,녹음,프로듀싱, 믹스는 물론 기획, 제작까지 혼자서 해 내었다.지금까지 발표 된 몇 가지의 Techno 계열의 음반들이 방송 시스템과 대중들의 인식을 의식해서 겉으로는 Techno를 표방하면서도 정작 그 내용은 적당히 가요화 시켜서 내놓거나 여전히 노래 반주로 활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이번 달파란의 [휘파람 별]은 그야말로 한치 양보도 없이 고집스럽게 밀어붙힌 본격 Techno라고 인정할 만하다. 국내 첫 본격 Techno 음반으로 기록 될 DJ 달파란의 ‘휘파람별’을 들으며 이 세기말의 힘겨운 언덕을 기쁨의 휘파람을 불며 넘어가보자.
1. 지구를 떠나며 5:05
첫곡 ‘지구를 떠나며’는 샘플링 된 인도 타악기 타블라 소리가 인상적으로 펼쳐지며 상당히 동양적인 비전을 보여주는 곡이다. Break Beat 스타일로 경쾌하면서도 뉴에이지 음악을 듣는 것처럼 편안한 기분을 안겨준다.
2. 휘파람별의 외계인 4:43
타이틀 곡으로 전형적인 Techno 리듬을 상당히 재미있게 만들었다. 이 곡의 백미는 역시 샘플링 된‘신바람 이박사’의 목소리이다. 거친 Lo-Fi 사운드로 반전되는 리듬과 이박사의 노래가 절묘한 Groove를 자아낸다. 이 곡은 전형적인 정통Techno이지만 Techno에 생소한 사람도 절로 고개를 흔들거릴 만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한국형 Techno의 수작이다.
3. 휘파람별의 초대 3:50
달파란의 초대의 멘트가 들릴 듯 말듯 낮게 읊조리다가 빠른 비트가 달려 나온다. Drum & Bass 스타일. 휘파람별의 초대라는 제목에 걸맞게 흥미진진함이 예견 될 만큼 변칙적인 리듬들이 줄달음치면서 광속의 우주선을 타고 달려가듯 새로운 음악세계로 이끌어 간다.
4. 휘파람 도시 5:42
House Techno 스타일로 앞 곡 ‘휘파람별의 초대’의 Drum & Bass 스타일로 인해 당혹해진 바이오리듬을 찬찬히 가다듬어 주는 기분이다. 휘파람 도시는 깔끔하고 안정적인 곳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안정적이고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느긋하게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5. 휘파람 나무 5:08
휘파람 도시처럼 House Techno 스타일 위에 조금 더 복잡한 Trance적인 요소가 혼합된 곡이다. 뿌리에서 줄기로 잎으로 수맥을 따라 물이 흐르듯 어떤 에너지가 생명력 넘치게 순환하듯 리듬과 소리의 파장들이 치밀어 오르고 뭉치고 흩어진다.
6. 휘파람 뉴스 2:53
조금은 불길한 예감이 들게 하는 느린 비트가 흐른 후에 본격적인 Drum & Bass 스타일의 리듬이 다급하게 달려 나온다. 짧은 곡이지만 Drum & Bass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7. 휘파람 언덕의 바람 4:56
변형된 House 스타일.멀리서 바라본 휘파람 별의 언덕 능선들은 휘파람 소리는 바람에 날려 들리지 않고 휘파람 외계인들의 끝없는 행렬만 보이는 듯 하다. 휘파람 외계인들의 의심 없는 언덕을 넘는 행진이 계속된다.
8. 휘파람 코믹 댄스 파티 5:22
House Techno. 바람부는 휘파람 언덕을 넘어 휘파람 외계인들은 댄스 파티를 하는가. 실제로 Club에서 댄스 파티를 한다면 상당히 어울릴 곡으로 LP로 나온다면 Techno Club DJ에게 각광을 받을 만한 곡이다. 가정용 오디오나 워크맨으로 감상하기엔 진짜 맛을 느끼기에 아쉽다.
9. 휘파람 광장 3:20
앞서 휘파람 뉴스에서 잠깐 보여진 Drum & Bass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위로 간헐적으로 펼쳐지는 단순하고 익숙한 멜로디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비전을 보여주는 Drum & Bass 곡이다.
10. 광장 콘써트 3:12
Digital Rock. 기타와 베이스 사운드가 나오니 새삼 반갑기도 하다. 노이즈 섞인 리듬 파트 위에 경쾌하게 펼쳐지는 기타와 베이스가 얼터너티브한 분위기와 함께 신나는 라이브 콘써트를 상상해보게 한다.
11. 비닐의 여신 6:54
Minimal Techno. 매끈매끈하고 단순명료 한 사운드의 반복으로 Club에서Mix할 경우 전혀 새로운 느낌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은 곡이다. 적당히 비워두는 여유는 DJ 활동 경험 없이는 보일 수 없는 영역이다. 사실 최근의 음악들은 소리가 너무 넘친다. 그것은 만드는 사람의 심리적 불안에 기인한다고 본다.
12. 휘파람 별의 논리 6:18
기본 리듬 틀은 House로 분류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샘플링 된 소리들의 꼴라쥬를 통해 상당히 재미있는 느낌의 독특한 곡이 되었다. 황신혜밴드 김형태의 목소리를 샘플링해서 변조한 목소리가 기이한 뉘앙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국식 어깨춤이 어울릴만한 Groove를 자아낸다. ‘바람이 분다. 바뀐다. 비가 내린다.깨끗해진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13. 휘파람 생활 (휘파람 루프) 3:08
굳이 분류하자면 Minimal Techno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분류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상당히 독특한 곡이다.국산 LP와 턴테이블, 그리고 샘플러만을 이용해서 만든 음악으로 오래된 레코드 판에서 따온 소리 특유의 스산함이 퍼져 나온다. 휘파람 별의 여행 끝에 가지는 안식과도 같은 명상적인 곡이지만 어딘가 공허한 기분도 들게 한다.
- 황신혜 밴드 김 형 태 (from Songstudio.ne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