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낭만적인 앨범을 남한에선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 앨범은 한 사람의 사회자 혹은 성우가 각각의 노래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시디 뒷면에 적혀있는 8개의 곡 수와 달리, CDP에 이 앨범을 넣었을 때 무려 18곡에 이르는 플레이 리스트에 당신은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히든트랙이라도 들어있나? 하지만 매끈한 목소리의 간단한 소갯말이 독립된 트랙으로 각 노래의 앞에서 좌표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이 앨범에서 진짜 노래는 마지막 무제트랙까지 합쳐 9곡입니다.
이것은 단편 영화 같은 것일까요?
증폭기가 몸담았던 "굴소년단"의 드러머 펠릭스가 시상식장 사회자풍의 목소리로 펼치는 곡 소개는 많이 간단합니다. 곡목 소개 그 이하 이상도 아니지요. 동음이의어에 대한 친절한 이야기에 대한 설명 (선원), 다소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는 설명(고원)등. <극좌표>의 이런 형식은 공통된 주제에 집중한 짤막한 단편 영화를 보는 듯한, 그리고 그 주제를 찾아가는 좌표와 방해자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노래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감정 - 아마츄어증폭기의 가사에서 '없-'라는 글귀의 반복적인 표현을 통해 두드러지는 바로 그 감정 말입니다. 네, 주제가 아니라 감정입니다. 그것은 도데체 어떤 감정일까요?
아마츄어증폭기의 유일한 구성요소인 한받은 평소에 가장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제 1호 남한 뮤지션으로 강병철과 삼태기를 듭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룩한 음악적 성과로 일상적 낭만성을 들지요. 바로 여기 이 땅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사를 흥겨운 멜로디로 표현했다고 생각해서일까요? 그렇다면 아마츄어증폭기의 <극좌표>야말로 그 일상적 낭만성의 최적의 후계자가 아닐까 합니다. 그것도 클래식 기타 한 대와 컴퓨터를 이용한 간단하다 못해 가난해 보이는 작업 과정을 통해서 표현했으니 더욱 기특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남한 청년의 외로운, 가득 찬, 고단한, 행복한, 평범한 일상사는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로 표현됩니다. 이것이 바로 <극좌표>의 범상치 않은 감정, 판타지에 가까운 아마츄어증폭기식의 낭만성이겠지요. “녹음 짙은 숲속을”그대와 걷고 싶은 “탐욕스런 소년”, “밤하늘 아래에서 기타를 들고 나와 꿈속에 나타나는 그대를 노래하는 공원”, 생각나는 것은 “너의 몸매 하나뿐”인, 마침내 “아무도 없는 거리”를 “둘이 걷고”있는 신원미상의 청년, “내 방안에는 아무도 없는” 외로운 청년, “이기심으로 물들어 살아온 허약한 이상주의
자”로 다양하게 채색되어진 고단한 현실은 확실히 판타지에 가까울 정도로 변태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낭만성조차 매끄럽지가 않으니 <극좌표>의 감성은 정말 묘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소위 로우파이 방식으로 녹음된 앨범들이 지닌 거친 소리와, 평범하지 않은 곡의 구성은 매끈해 야할 분위기를 다시 아마츄어증폭기 식으로 뒤집고 뒤틀어 당신을 현실로 내 몹니다. 직접적이고 반복적인 가사, 어느 곡에서나 일정 정도 이상으로 들리는 잡음, 클래식 기타로 연주되는 유쾌한 베이스 라인 등은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아마츄어증폭기식의 감성을 구축하는데 정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앨범에서 무심코 넘어가 쉬운 것은 바로 아마츄어증폭기가 클래식 기타로 연주하는 멜로디/베이스 라인의 유려함 입니다. 첫 번째 트랙 “금자탑”에서 들리는, 베이스가 연주할 법한 베이직한 기타 솔로, “공원”, “순간”, “고원”등에서 들려지는 반복적인 기타 프레이즈는 보컬과 함께 각각의 곡에
또 다른 주요 멜로디 라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선원”, “폰팅할까요”, “극좌표”에서 들려지는 코러스도귀 기울여 들어야만 합니다. (한받이 펫셮 보이즈에게 받은 음악적 영향이 살짝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또한 아마츄어 증폭기가 “목소리의 배경에 깔려 드럼과 리듬제조기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 리듬기타는 단순한 반복이 결코 지루하지도 않고 오히려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이 리듬 기타의 반복되는 스트로킹은 역시 반복되는 가사와 함께 놀랄만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어 아마츄어증폭기의 노래를 한번이라도 듣게되면 이상하게도 귀에 자꾸만 그 가사와 멜로디가 맴돌게 되는 후유증을 만들지요.
자 이쯤에서 <극좌표>에 대한 골치 아픈 설명을 끝내겠습니다. 어쨌든 음악은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니까요. 2003년 초부터 클럽 빵을 중심으로 수많은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해온 아마츄어증폭기의 노래들이 <극좌표>라는 이름으로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아마츄어증폭기가 펼쳐 보이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일상 낭만이 세계에 한 번 빠져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츄어증폭기 소개
아마츄어증폭기는 겸손하고 예의바른 한받이 라는 청년의 일인밴드입니다. 아마츄어증폭기라는 이름은 포르노그래피의 하위장르와 전자전기분야에서 각각 “아마츄어”와 “증폭기” 라는 단어를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강병철과 삼태기, 펫셮보이즈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아마츄어 증폭기는 2002년 경부터 방 구석에서 혼자 노래를 만들어 왔고 2003년부터는 클럽 빵, 롤링스톤, 홍대앞 프리마켓, 디지비지 등에서 수많은 공연을 해오고 있습니다. 뮤지션 아마츄어증폭기는 영화감독이기도 합니다. 2002년 자체 제작한 <29세의자위대>에 실린 명곡 “고무인형”은 한받에 의해 영상으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아마츄어증폭기가 말하는 <극좌표>
극좌표는, 아마도 지금까지 나온 남한의 앨범들 중에서 강병철과 삼태기의 음악적 성과중 하나인 낭만성의 최적의 후계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그 가사들은 문학청년의 (아직은 그 부족성이 심하게 감지되는)감수성이 엿보이며, 펫셮 보이즈의 영향권 아래에서 남한의 생활상-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 판타지로 변태変態된 가사들을 말함-을 반영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가사는 노래만큼이나 매우 짧다. 도대체 무엇을 노래하는 것인가-소재적 측면에서-가 두드러지기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