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최후의 미완성 걸작 <푸가의 기법 The Art of Fugue>이 이태리를 대표하는 전설의 현악4중주단인 이탈리아 4중주단(Quartetto Italiano)을 이끌었던 파올로 보르치아니의 고결한 숨결이 묻어나는 마지막 레코딩으로 태어났다. 수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의 편곡에 따라 조반니 4중주단의 두 연주자(포치와 시몬치니)와 이탈리아 4중주단의 보르치아니 부부(보르치아니, 페그레피)등 지난 수십년을 이태리를 대표하는 구,신 현악 4중주단이 헤쳐 모인 결실. 더군다나 당시 보르치아니는 암과 류머티즘과의 투병으로 몸에 주사바늘을 꽂은 채 연주했다고 전한다.
현악 4중주로 빚어낸 백조의 노래
“바흐는 그 이름이 시냇물인데 그의 음악은 바다와 같이 망망하다.”
베토벤은 바흐의 위대함을 이렇게 말했다. 시냇물처럼 영롱하면서도 바다처럼 심오한 바흐 음악의 양면성을 잘 대변해 주는 대목이다. 바이마르 시대, 쾨텐 시대 그리고 삶을 마감했던 라이프치히 시대를 통틀어 바흐는 일생동안 교회와 귀족에 귀속되어 많은 일에 시달리는 고단한 직업인이었다. 그에게서 음악은 평범한 일상의 생활이자 평범이 허락되지 않는 예술이기도 했다. 이렇듯 자유로운 창작활동과는 거리가 먼 상황에서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야 했던 성실한 생활인으로서의 바흐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기악곡이든 성악곡이든 바흐의 모든 음악작품의 표지에는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라고 기록되어 있다. 모든 음악은 하나님을 위해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흐 음악의 근원은 바로 그의 깊은 신앙심에서 찾아야 한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성서를 펼쳐 놓고 해당된 대목을 손으로 짚어가며 깊게 몰입해 보라. 어느덧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이윽고 정화된 몸 안쪽 깊은 곳에서 샘물과도 같이 흘러나오는 기쁨의 눈물을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바흐가 신앙에 바친 그 정신의 역동성은 이미 시대를 넘고 국경을 넘어서 전 인류가 공유하고 있다. 바흐의 음악은 심지어 기악곡 뿐만 아니라 수난곡?미사곡?오라토리오 작품들까지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편곡되어 쓰이고 있으며, 클래식 연주자도 재즈피아니스트도 바흐를 연주한다. 바흐의 음악은 이렇게 다원적 가치를 지니고 21세기 인터넷 시대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결국 바흐는 음악의 시작이자 끝인 셈이다. 스트라빈스키까지도 온갖 음악기법을 시도한 끝에 단말마처럼 외쳤다. “바흐로 돌아가자!”
1749년, 바흐의 두 눈은 세상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추한 세상을 보지 못해서였을까. 바흐는 인생의 종착지에서 자신의 음악을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악의 헌정], [푸가의 기법] 등의 창작에 몰두했다. 그리고 1750년 [푸가의 기법]을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그렇게도 갈망했던 신의 품으로 이끌려갔다.
바흐의 음악처럼 치밀하게 짜여진 엄격한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적인 면이 결코 즉흥성과 마주보고 있지는 않는다. 이질적인 두 가지 요소가 언제나 공존하며 결국에 가서는 조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흐 음악의 형식미는 대위법으로 대표되는 폴리포니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크 음악의 폴리포니는 일단 바흐에게서 마지막을 고하고 이후 무한한 다양성으로 발전하며 뻗어갔다. 그래서 바흐의 마지막 작품인 대위법을 집적한 [푸가의 기법]은 새로운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바흐는 악기 지정도 빠르기 표시도 하지 않은 채 후세 사람들의 몫으로 떠넘기고 세상을 떠났다. [푸가의 기법] BWV.1080 은 작곡가 바흐의 마지막 백조의 노래이다. 평생을 그가 믿었던 하나님에 대한 끝없는 동경으로 교회에 봉사하면서 숱한 교회음악의 걸작을 쏟아내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는 충실한 가장이었으며 생활인이었던 바흐의 마지막 작품이 바로크 음악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푸가를 집대성한 [푸가의 기법] 이었던 것이다.
[푸가의 기법]은 총 19곡으로 이루어져있다. 우선 5개의 푸가 그룹이 있는데, 단순푸가(Simple fugue) 4곡 (제1-제4 콘트라풍크투스, 4성), 이중푸가(Double fugue) 2곡(제9-10 콘트라풍크투스, 4성), 삼중푸가(Triple fugue) 2곡(제8, 제11 콘트라풍크투스, 각각 3성과 4성), 반행푸가(Counter-fugue) 3곡(제5-7 콘트라풍크투스, 4성), 투영푸가(Mirror fugue) 2곡(3성의 콘트라풍크투스, 제12 콘트라풍크투스, 각각 3성과 4성)과 마지막 곡인 미완성으로 끝난 ‘3개 주제에 의한 4성의 푸가’가 그것이다. 그리고 4곡의 카논(옥타브, 10도, 12도, 확대 반진행에 의한)과 ‘두 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푸가’가 1곡 있다. 바흐가 총 20곡으로 구상했었다는 일화도 전하고 있으나 마지막 19번째 푸가의 세 번째 주제 239마디에서 악보는 멎어있다. 즉 반음계적인 음울한 그의 이름을 딴 B-A-C-H 주제로 끝나는 것이다.
[푸가의 기법] 초판본에는 바흐의 코랄 ‘저는 당신의 보좌 앞에 이렇게 섰습니다’ 가 덧붙여져 있는데, 이는 미완성곡의 이유를 보여주는 것으로 주님 곁으로 가고자 했던 죽음에 대한 암시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즉 이미 세상에 대한 모든 미련을 넘어선 해탈의 경지에 들어서서 저 피안의 언덕을 갈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폴 뒤 부셰는 이렇게 말했다.
“[푸가의 기법]은 음악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소리의 한계에 도달한 [푸가의 기법]은 죽음이라는 또 다른 완벽함에 근접한 자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음반에 담긴 [푸가의 기법]은 현악 4중주단의 연주로 이루어진다. 그동안 슈투트가르트 챔버 오케스트라와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와 같은 실내악단과 피아노, 하프시코드 버전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에게 또다른 바흐 음악으로 들어가는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이또한 본고장 독일 연주자가 아닌 이질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남국의 정열적인 이탈리아 연주자가 시도하고 있는 만큼 바흐 음악의 세계화의 한 단면을 증명해 주는 셈이다. 실황으로 녹음된 현악 4중주를 위한 버전에서는 ‘두 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푸가’를 제외한 총 18곡이 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