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28)씨가 일본 영화 음악을 만들었다. 영화 <쉘 위 댄스? >로 유명한 스오 마사유키가 제작을 맡고 이소무라 가즈미치가 감 독한, 오는 10월말 일본에서 개봉 예정인 < 간밧테 이키맛쇼이 >가 그 영화다. 우리나라 음악인이 일본 영화의 음악을 맡기는 이씨 가 처음이다.
그는 ‘힘내라’ 또는 ‘최선을 다하자’정도의 뜻을 지닌 < 간밧테 이키맛쇼이 >를 위해 모두 12곡을 만들었다. 이씨의 7집 앨범 <외롭고 웃긴 가게>의 마지막 곡 <어기여 디어라>가 영화의 타이 틀 곡이다. 영화에 쓰인 음악들은 연주곡이거나 한국어 또는 영어 노랫말에 얹혀 있다.
그가 일본 영화음악을 만들게 된 데에는 적잖은 ‘우연’이 작용 했다. 지난 96년 11월 일본 엔에치케이 방송이 아시아의 음악인들 을 모아 연 ‘아시안 플라워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 던 이씨를 영화의 제작진이 보고 ‘낙점’한 것이다. 절규하지 않 되 힘이 느껴지는 그의 노래에, 민족색이 강하지 않은 ‘국제적’ 음악을 원하던 영화 제작진이 반한 것이다. 그건 91년 이후 미국 ·일본 등지를 떠돌며 음악공부와 활동을 하던 이씨가 “언어적 단절을 넘어 이미지로 음악을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우연은 또 있다. 영화의 무대가 바다라는 점이다. 일상의 지루함 을 견디지 못해 가출한 15살 소녀는 바닷가에서 물 위를 스치듯 지나는 보트에 매료되어 학교 보트부에 든다. 남자만의 보트부에 여성팀원을 끌어들이고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리곤 무 엇엔가에 혼신의 힘을 다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바다는 권태를 밀어낼 희망의 전달자인 셈이다. 한국어를 모르는 제작진 은 음악적 느낌만으로 이씨를 선택했는데, 그 음악이 바로 한국의 오랜 뱃노래에서 착상을 얻은 <어기여 디어라>였다. 이쯤되면 우 연이 아니라 인연이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88년 <담다디>로 혜성처럼 등장해 상종가를 치던 인기 연예 인이었던 그는 91년 “내 음악을 하고 싶어서” 방송활동을 중단 하고 음악순례에 나섰고, 이번 영화음악 제작은 그 실험의 한 매 듭쯤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지난해 말 영국의 팝 전문 레이블 ‘ 버진’과 계약해 <리채>라는 셀프 타이틀 앨범을 내기도 했던 그 는 “영국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꿈을 은근히 내비 쳤다.
- 1998. 8. 7. 한겨레 신문 이제훈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