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과 김대진"
피아니스트 김대진은 존 필드의 녹턴에 이어 다시 쇼팽의 녹턴을 음반에 담았다.
우리가 연주회를 가거나 음반을 듣게 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누가 무엇을 연주하는가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연주가에 대한 믿음, 그리고는 그 연주가와 그가연주하는 곡이 감정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잘 맞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동시에 떠오르는 것이긴 하지만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이 우선 충족될 때 음악 듣고 싶은 생각이 난다.
그런 점에서 김대진이 국내에서는 처음이고 국외에서도 흔치 않은 존 필드의 녹턴을 내어 놓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특별한 기대감을 가졌고 음반을 들으면서 김대진과 녹턴의 만남이 예사로운 만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피아니스트 김대진이 음악적 믿음을 주는 것은 연륜과 더불어 그의 연주가 성숙함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많은 무대를 소화해 내면서도 그는 한번도 청중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연주가로서 청중으로 하여금 듣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함께 충족시킴으로서 감동을 체험케 하기 때문이다. 국내 여건이 아직도 전문 연주가의 시대를 허락하지 않아 김대진도 교수와 연주를 병행하고 잇지만 그는 이 두 가지 분야가 결코 부딪치지 않도록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김대진은 교수로서의 연주가가 아니라 연주가로서 교수직을 함께 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럼으로 김대진의 연주는 교수가 의례적으로 하는 무대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전문 연주가로서 청중에게 다가가고 있고 청중을 음악 듣는 즐거움 속에 빠져들도록 갖가지 음악적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 전문 연주가로서 연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그는 연습에 몰두하며 무게 있는 레퍼토리로부터 대중적 인지도가 강한 소품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낸다.
김대진은 이미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전곡을 하루에 연주한다든지 슈만, 그리그,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세 곡을 하루밤 무대에 올리는 파격적인 프로그램으로 놀라움과 즐거움을 함께 맛보게 했고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시리즈를 시작, 순도 높은 맑은 정신이 피아노에 녹아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가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녹턴 시리즈를 음반에 담아낸 것은 연륜과 무관하지 않다. 그건 연주가로서 순수한 마음과 올곧은 음악가로서의 정신을 유지하며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예술적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있는 것도 그러하지만 녹턴 특히 쇼팽의 녹턴은 음악적 테크닉만으로 해결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해결하는가? 이 물음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김대진의 녹턴을 접해야 한다. 안톤 루빈슈타인은 일찍이 쇼팽을 가리켜 피아노의 시인, 피아노의 마음, 피아노의 영혼이라 불렀는데 실로 피아노의 묘미를 쇼팽만큼 터득한 사람도 없을 것이며 그런 만큼 시적인 서정과 뜨거운 열정의 마음, 그리고 차원 높은 정신을 소유하지 않고는 쇼팽을 재현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피아니스트 김대진은 많은 연주를 통해 서정적 낭만과 용솟음 치는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었고 대곡도 그러하지만 특히 농축된 메시지가 들어있는 소품 연주에서 그가 풀어내는 아름다움의세계는 많은 팬들을 음악 듣는 즐거움 속에 빠져들게 한다.
지난 초가을 김대진은 춘천에서 쇼팽의 녹턴을 녹음했는데 그는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씩 되풀이하는 가운데 감정의 폭을 넓히며 즉흥 어법에서 나오는템포의 유연성이 긴장과 여유를 교차시켜 짙은 여운을 남겨 주었다. 그후 그의 마스터 테이프를 듣는 순간 연륜의 굴곡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 정과 동의 세계가 때로는 한을 풀어내듯 부딪치고 엉키며 허공을 향해 울려 퍼졌다.
쇼팽은 많은 피아노 작품을 남겼지만 유독 녹턴의 경우는 그가 바르샤바를 떠나던 20세 때부터 시작해서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그러니까 36세 때까지 작곡한 것이고 보면 어쩌면 쇼팽의 일대기라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럼으로 녹턴속에는 쇼팽의 삶의 여정이 배어있고 삶의 농도를 이해하지 않고는 전곡을 연주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김대진은 쇼팽과 녹턴의 접점을 찾아내고 특히 한국적 정서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첨가함으로서 전곡을 듣는데도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음악적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이든 적당히 그리고 빨리 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김대진의 녹턴은 여유의 의미, 느림의 미학을 반추케 하며 그가 만드는 진한 사랑의 빛깔은 음악 듣는 이유를 터득하게 할 것이다. 쇼팽의 녹턴은 음악적 관심 또는 단순히 피아노 음악의 한 장르로 접근해서는 결코 깊숙한 감동의 세계를 맛볼 수 없다. 그건 연주자나 감상자 모두에게 해당된다.
한국 피아니스트로서는 처음으로 녹음한 김대진의 녹턴 전집은 그런 의미에서 외국 연주가들과는 또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정서를 찾기 위해서는 마음과정신으로 접근해야 한다.
쇼팽은 존 필드의 녹턴에서 녹턴이라는 장르를 빌려 왔다. 그러면서 쇼팽은 더많은 삶의 이야기를 녹턴 속에 담았다. 피아니스트 김대진은 이두가지 녹턴을 연속해서 녹음했고 우리는 녹턴의 역사를 함께 맛보게 된 것이다. 존 필드의 녹턴을 서울의 한 성당에서 녹음한 김대진이 쇼팽의 녹턴 녹음 장소를 연주홀로 바꾼 것은 보다 자유롭고 보다 진한 감정의 세계를 표출하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본다. 존 필드-쇼팽의 녹턴 시리즈는 우리 모두에게 사랑스럽고 귀한 친구로 남을 것이다.
글 : 한상우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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