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홀에서 지난해 7월에 녹음한 음반이다. 전반부에는 쇼팽의 <발라드> 전곡이, 후반부에는 풀랑크가 10여 년에 걸쳐 작곡한 8개의 <녹턴>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정교한 기교와 역동적인 구성 면에서는 쇼팽의 발라드가 우선적으로 관심을 끈다.
녹음 현장과 녹음 기술진의 테크닉 차이라는 변수들을 고려해도 김대진의 스타일과 취향에는 매력적인 면모가 있다. 그것은 무색 투명한 음색, 날씬한 표상, 극적인 대비가 빚어내는 부조감을 그때그때 적절히 조절하는 능란함이다. 그리고 화가적인 기질도 상당히 지니고 있다.
김대진이 연주한 발라드는 민요적인 면모나 자장가적인 면모가 아주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연주자는 동심의 소탈하고 정겨운 모습을 작품 형성의 중요한 모티브로 여기고 있다. <발라드 2번>은 물론이고 <4번>의 시작 부분을 포함해 여러 곳에서 이러한 면모가 짙다. 필자는 이러한 해석관에 많은 공감이 간다. <발라드 4번>에서는 한번 사용된 선율을 변형시켜 가며 작품의 중심부로 유지해 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약간의 리타르단도가 지나간 슬픔을 환기시키고 추억과 환상 속으로 빠져든다.
이 음반의 발라드 곡들은 정교한 조각술이나 강약의 대비 등도 유기적인 조화 속에 어우러져 있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군더더기 없는 형상에 접하게 한다. 필자는 이 음반에 담긴 발라드 4곡이 명료한 모습을 지녔다고 생각된다. 작품이 지닌 악상을 명료한 형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최상급의 연주라고 평하고 싶다.
풀랑크의 음악은 쇼팽의 발라드와는 감상적인 궤도를 조금 달리하고 있다. 여기서는 친근한 영상들을 빚어내고 이미지 메이킹을 즐기는 면모들이 좋다. 맑은 수목을 지나면서 자전거 하이킹을 하고 어떤 때는 기이한 성에 들어가 묘한 분위기에 빠져들기도 한다. 첫 번째 야상곡에서는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아쉬움이 묘하게 교차한다. 연주자는 이별의 아쉬움 쪽에 느긋한 터치를 준다. '나방' 이라는 부제가 붙은 곡에서 연주자가 그리는 나방의 모습을 보면 날개의 퍼득임이 무척이나 예리한데, 타건이 이루어지는 음역에 따라 예리함의 정도가 조절된다. 7번째 녹턴은 맑은 산소와 정원이 가상적으로 펼쳐진 연주다. 중년에 접어드는 김대진이 내놓은 음반으로 풍요로운 이미지들과 아련한 감정들로 채워진 작품이다.
<월간 그라모폰 2001년 5월호 중에서> - 글· 이석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