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밴드의 혹은 어떤 흐름의 시초의 그것. EP [파는 물건]의 재발매
붕가붕가레코드 대중음악 시리즈 no. 13
눈뜨고코베인 [파는 물건]
눈뜨고코베인은 밴드를 막 결성한 2002년의 어느날 데모를 녹음하기로 결심한다. 몇 달 후에 완성된 이 녹음본은 밴드의 자체유통이라는 가장 인디적인 방식으로 ‘출시’된다. 앨범 타이틀인 ‘파는 물건’은 본래 팔 생각으로 만든 물건이 아닌데 팔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결정되었다고 한다.
각 곡의 연주자는 깜악귀(보컬), 목말라(기타), 슬프니(베이스), 연리목(건반), 장기하(드럼)으로 지금은 솔로 뮤지션이 된 장기하의 당시 드럼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점도 희소하다. 밴드 자체적으로 500장만 발매했던 이 앨범은 곧 절판되어 십년 가까이 인디신에서 전설의 희귀본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2012년, 붕가붕가 레코드에서 재발매가 결성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수록곡 중 ‘그자식 사랑했네’는 밴드의 정규 1집에서 레게 버전으로 실리게 되지만 본작에서는 좀더 아기자기한 모던록 스타일이다. ‘그자식’을 사랑한 누군가의 애증을 담았다. 곡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동명의 연극이 대학로에서 롱런하고 있기도 하다.
‘영국으로 가는 샘이’는 영국으로 어학 연수를 가는 여자친구에 대한 애환을 담고 있다. “나보다 더 영어가 좋아~!”라고 묻는 가사가 치명적이다. 음악적으로는 하드록 스타일이다.
‘그대는 냉장고’는 밴드 최초의 자작곡으로 나에게 차갑게 구는 상대에 대한 이미지를 ‘냉장고’, ‘에어컨’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누나야’는 의외로 진득하고 환상적인 사이키델릭을 표현한다. 이들이 사뭇 진지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후의 앨범에서 이들이 가벼움과 진지함이 교차하는 스타일을 보여주게 된다는 예시가 된다.
‘외로운 것이 외로운 거지’는 밴드 초기의 히트작으로 밴드 자체로 제작한 뮤직비디오가 인터넷에서 소폭 히트하기도 했다. 초기 눈코의 캐치한 가사와 단순명쾌한 음악 성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기도 하다. 히든트랙으로는 밴드의 정규 1집에 첫 곡으로 실리게 되는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가 실려 있으며 이것은 지금은 ‘장기하와 얼굴들’로 활동하는 장기하의 작곡이다.
재발매의 디자인은 붕가붕가레코드의 수석 디자이너 김기조가 담당하였으며 리믹싱과 마스터링은 수석 엔지니어인 나잠수가 맡았다.
*시대를 앞서나간 괴작, [파는 물건] 재발매의 의의
한 밴드의 출사표, 혹은 어떤 흐름이 기록한 최초의 발걸음
지금에서야 그 기지나 음악성의 참맛을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는 눈뜨고코베인이다. 1집 [Pop to the People]을 지나 적막한 우주와 인류의 기괴한 가정생활이 설화적으로 얽히는 2집 [Tales], 그리고 죽음의 테마를 도입한 [Murder's High]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계속해서 테마적으로, 음악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들이 내놓은 최초의 앨범, EP [파는 물건]이 발매될 당시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은 치기 어린 밴드로 취급받기 일쑤였고 평단에서는 그들의 진가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일단 평단에서는 그들을 어느 카테고리에 넣을까 망설이다가 결국 ‘키치밴드’로 분류하곤 했다. 그들은 당시 홍대 인디신의 대세를 이루고 있던 그런지/모던록과는 영 다른 음악을 시도했는데 그렇다고 대중가요와 같지도 않았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장기하, 10cm 등의 등장과 함께 ‘대세’를 이루고 있는 일상속의 기지를 살려낸 가사는 어떤가. 이들이 들고나선 당시에는 ‘가볍다’라는 취급을 받았다. 심지어 장난으로 음악을 한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연주력에 집중하지 않는 펑크 속성의 음악과 밴드가 공연에서 선보이는 재기넘치는 퍼포먼스도 그러한 오해를 부추겼다. 그런데 사실 이런 평가는 그들이 ‘태도’면에서 이전의 밴드들과 상당히 달랐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이전의 밴드들은 자신들이 음악적으로 진지하다는 것을 어떻게든 증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증명에 별달리 관심이 없었다. 이들에게 음악적인 진정성과 ‘진지해 보이는 음악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전자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증명해보일 생각은 없었다고 할까. 그런 점에서 당시 그들은 새로 출현한 인종이며 최초의 네안데르탈인에 가까웠다. ‘뭔가 이상한 애들이 있네?’ 싶었는데 어느새 그들로 세상이 가득 차 버리는 그런 것 말이다.
좌우간 시대는 변화했다. 눈뜨고코베인이 홍대에 들고 나타났던 음악은 몇 년이 어느 순간 홍대 뿐 아니라 주류에서도 ‘먹히는’ 요소가 되었다. 이것은 이 밴드의 드러머였던 장기하가 눈뜨고코베인의 장점을 동반하여 자기 스타일로 만들어낸 솔로곡들이 차트를 점령하며 다시 입증되기도 했다. 혹자는 최근의 인디신의 흐름은 눈뜨고코베인이 이전에 조금씩이라도 다 선보인 요소들의 변주라고 말한다. 일상적이면서 폐부를 찌르는 한 마디의 가사, 라이브에서의 시각적인 퍼포먼스, 판타지 컨셉트가 그렇다.
심지어 이들이 초기에 들고 나온 한국말 가사에 대한 강한 애착과 산울림 송골매 등 70년대 한국록 스타일 음악에 대한 애정도 그렇다. 당시 눈뜨고코베인이 들고 나왔을 때 이 요소는 소수적인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 한국말 가사의 중요성은 인디록에서 필수를 넘어 당연한 것이 되었으며 한국록은 TV의 단골 리메이크 대상이 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이들에 대한 평가도 어느새 ‘변화’했다. 밴드 리더 깜악귀는 어느 순간 사람들의 평가가 바뀌어 ‘어벙벙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것은 꼭 전멤버인 장기하의 히트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평가가 바뀌는 음악이라는 게 정말 존재했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너무 앞서버리는 밴드에만 일어나는 일이다.
눈뜨고코베인이 그렇다고 대중적인 밴드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요즘 인기를 얻는 밴드들에 비해서 눈코의 음악은 ‘하드’하며 오히려 그것이 그들을 다른 밴드들과 구분하게 만든다. 다만 그들이 데뷔 초기에 들고 나온 재능과 자산, 그리고 ‘태도’는 인디씬에 많은 것을 예감하게 했고 또 이후에 실제로 흔하게 실현된 요소들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들은 이미 2003년에 2010년의 요소를 태동하고 있었다.
이것은 현재 인디신의 ‘대세’인 장기하가 인터뷰에서 몇 번이나 언급했듯 그가 지금의 음악 취향을 형성하게 하는데 밴드의 보컬이자 리더 깜악귀의 영향이 지대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눈뜨고코베인은 지금은 붕가붕가레코드로 대표되는 일군의 ‘음악 공동체’에서 가장 먼저 홍대로 진출한 멤버들이었다. 그들 자체가 이 음악 공동체의 가장 앞에서 흐름을 선도해나갔고 그들이 지난 길로 몇몇 밴드들이 진출하며 크고 작게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는 ‘브로콜리 너마저’와 ‘장기하와 얼굴들’,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있고 혹은 당시에는 대학 레이블이었던 붕가붕가레코드 그 자체가 있다. 멀리 보면 지금의 ‘구와 숫자들’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 서적을 참조)
[파는 물건]의 재발매는 바로 그 때 그 시기, 홍대 인디씬에 너무 일찍 ‘새로운 스타일’을 들고 나왔던 밴드 눈뜨고코베인의 모습을 증언한다. 이 앨범에 담긴 것은 이제 막 음악이라는 걸 시작한 어떤 밴드의 모습이다. 이 다섯 곡짜리 EP는 그 뒤를 따라 어떤 밴드들이 등장했는가를 그 사운드의 행간 사이로 조심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당시 밴드의 합주실에서 녹음된 사운드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으며 이제 막 밴드를 시작하는 눈코의 편곡도 거친 편이다. 밴드 멤버들은 연주가 투박하다는 것에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듯한 연주를 한다.
깜악귀의 보컬은? “이제 막 보컬이라는 것을 해보는 펑크 밴드”의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은 이 앨범의 단점이라기 보다 오히려 장점이기도 하다. 밴드가 지독하게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기에서 아무 것도 포장하고 가리지 않는다. 다섯 개의 곡에는 막 데뷔하는 밴드의 용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래서 도리어 상당히 흥미진진한 음악성을 드러낸다.
[파는 물건]은 당시의 재현할 수 없는 에너지와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분명 국내 인디록의 역사에 남을 만한 기념비적인 한 순간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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