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의 전위, 이적의 2003 통쾌한 도약 < 2적 >
이적이 돌아왔다. 파격과 실험, 그리고 깊은 성찰을 한데 담았던 패닉(Panic), 김동률과 함께 스탠다드 팝의 원류를 찾았던 카니발(Carnival), 정원영, 한상원 등 국내 최고의 연주자들과 함께 순도 100%의 진짜 펑크(funk)를 선사했던 긱스(Gigs) 등을 아우르는 자유분방한 활동으로 늘 한국 대중음악의 전위에 서 왔던 그가, 소리 없이 2년 반 여의 군복무를 마친 뒤 < 2적 > 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솔로 앨범을 들고 2003년 5월 우리에게 돌아왔다.
왜 < 2적 >인가?
“99년 < Rain >을 담았던 첫 솔로 앨범에 이은 두 번째 솔로 앨범이기도 하지만, 이적 음악인생의 제 2기를 시작하는 작품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고 그는 말한다. 약 3년의 공백을 통해 절치부심 새로운 도약을 꿈꾸던 그가, 드디어 자신 있게 야심적으로 내딛는 첫걸음이란 뜻일 게다.
음반을 들어보면 그의 성장이 괄목할 만 하다. 리듬은 더욱 정교해지고 탄탄해졌으며, 곡의 구성은 부쩍 유연, 풍부해졌다. 이전보다 멜로디컬해짐과 동시에 파워는 더 강력해졌다. 밴드 생활을 통해 단련된 그의 보컬 역시 깜짝 놀랄 정도로 폭이 넓어졌고, 가사는 보다 진지하고 관조적으로 삶을 응시한다. 풍부한 감성의 역동성을 자랑하는 이 앨범은 한 번 플레이어에 걸면 끝까지 귀를 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경박함을 자랑하는 이 시대 음악풍토를 일갈하는 음악적, 예술적 추구가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프로듀싱, 작사, 작곡, 편곡,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키보드 등을 전담하는 이적의 앨범이지만, 참여한 멤버들의 면면도 대단하다. 이미 긱스에서부터 천재소년이라 불리며 현재 자신의 앨범을 준비중인 올라운드 플레이어 정재일과, 2년 전부터 이적과 손발을 맞춰온 리듬프로그래밍의 귀재 이성훈을 비롯하여, 한국 R&B의 실력자 하림이 하모니카 연주를 해주었고, 역시 실력파 여성그룹인 빅마마의 멤버들 또한 코러스로 참여했다. 절친한 동료 김진표와 김윤아 역시 각각 한 곡씩 피처링을 해줬고, 녹음과 믹스는 국내 최고의 엔지니어 박권일이, 마스터링은 세계 최고의 마스터링 엔지니어인 뉴욕 ‘스털링 사운드’의 테드 젠슨(Ted Jensen)이 맡아 앨범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주었다.
음반시장이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고 한다. 혹자는 대중음악계의 음악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청자들이 등을 돌렸다고도 한다. 우리가 오늘 이적의 새 앨범 < 2적 >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다. 얼마나 오랜만에 열기로 똘똘 뭉친 순도 높은 앨범을 손에 들어보는가. < 2적 >이 한국 대중음악계의 새로운 흐름, 그 물꼬를트길 빈다.
수록곡 소개
1. 몽상적(夢想笛)-intro
‘몽상적’은 이적이 작년에 오픈한 개인 홈페이지(leejuck.com)의 이름이기도 하다.
환각적인 드럼엔베이스 스타일의 곡에 다양한 보이스 샘플들이 합성된 이 곡은, 말 그대로 무척이나 ‘몽상적’인 인트로로, 청자들을 앨범 속으로 강하게 끌어들인다.
2. 하늘을 달리다
시원하게 폭발하는 모던록 넘버. 이적 특유의 리듬감과 귀에 감기는 멜로디가 일품이다. 수시로 출몰하는 슬라이드 기타 또한 매력 포인트. 하늘을 달려서라도 다가가고 싶은 건 연인일 수도, 혹은 희망일 수도.
3.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흑인음악의 느낌과 모던록의 색채가 혼재하는 독특한 형식의 발라드 곡. 쓸쓸한 깨달음,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회한이 은은히 흐른다. 편안하면서도 귀에 꽂히는 멜로디가 한참동안 입안을 맴돈다. 하림의 하모니카 연주 또한 아름답다.
4. 바다를 찾아서
한여름 날 드라이브에 잘 어울릴 곡. 빅마마의 코러스와 함께 터지는 후렴이 시원하다. 중반의 베이스 솔로와 코러스들의 경연, 말미의 장난기 어린 스튜디오 장면 등이 웃음을 머금게 한다.
5. 장난감 전쟁
어린아이들이 장난감 갖고 놀 듯 전쟁을 획책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를 담은 곡. 비틀즈적인 화성과 다소 환상적인 가사가 묘하게 어울려 날을 세운다. 마치 시위현장을 옮겨놓은 듯한 후반의 대규모 코러스가 장중하다.
6. 어느 날 feat. 김윤아
카리스마와 마력을 자랑하는 자우림의 김윤아와의 듀엣곡. 동갑내기이자 절친한 음악적 동료이기도 한 두 사람이 듀엣을 한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겠는가하는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켜주는 기괴한 매력의 트랙. 오싹할 정도로 처연한 아름다움. 강한 시각적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곡. 노래방에서 부르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한국 대중음악사상 가장 이색적인 듀엣으로 기억될 듯.
7. 서쪽 숲
이상향을 그리나 노래만 부르고 만다는 슬픈 곡. 3박자의 포크 스타일이 이국적이다. 1절과 2절의 절묘한 사운드 전환도 흥미롭다. 동화적 가사에 담은 자조의 철학.
8. 거울놀이-interlude
어쿠스틱 기타 연주곡. 이적이 레드 제플린이나 비틀즈에게서 받은 영향은 이런 곡에서 잘 나타난다. 다음 곡 ‘그림자’로의 인도.
9. 그림자
패닉, 카니발, 긱스 등에서 펼쳤던 것 보다 더욱 강력해진 펑크(funk) 넘버. 기계적 리듬과 어쿠스틱 기타가 만드는 그루브 위로, 지미 헨드릭스를 연상시키는 거친 일렉트릭 기타가 포효한다. 분열된 자아에 대한 공포를 노래한다.
10. 착시(錯視)
피아노와 딜레이 사운드의 일렉트릭 기타가 이끌어나가는 모던록 넘버. 유려한 멜로디와 개성있는 곡구성으로 이적의 성장을 단적으로 읽을 수 있다. 잃었던 빛을 다시 구하는 소시민의 노래.
11. 순례자
마치 타박타박 걸어가며 읊조리는 듯한 노래. 삶의 길 위에서 때로 번뇌하고 때로 순응하는 순례자의 모습. 따뜻하고 여유롭게 앨범을 마무리하는, 실질적인 앨범의 마지막 곡.
12.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feat. Jp
보너스 트랙. 3번 트랙에서 하림의 하모니카 대신, 패닉의 동료 김진표의 랩이 자리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