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능숙해져 가는 건 생각보다 슬픈 일이었다. 어렵지 않다는 건 난처하지 않다는 것, 난처하지 않음이 설레지 않음과 비슷한 결을 가짐을 미처 몰랐다. 반복된 감정과 행동, 돌아보니 켜켜이 누적된 시간들이 스스로에게 포장된 저주를 건네준다. 익숙함이라는 선물, 내가 뜯어본 적도 없이 한아름 안아버린 무언가. 세상이 다채롭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몇 칸 안 되는 팔레트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 이 사람은 이런 타입일 것 같아, 저 사람은 그렇게 말할 것 같은데, 역시나, 괜찮아 그럴 줄 알았으니까, 상처도 되지 않았어 알고 있었거든, 예전에 너랑 비슷한 사람과 비슷하게 힘들어 봤어, 다행히도 비슷한 만큼 난처하지는 않아, 이런 게 성장했다는 거겠지, 가슴이 뛰지 않고 머리가 차가워, 손발이 저릿거릴 때는 설레어서가 아니라 대개 화가 치밀어오를 때, 내가 세워놓은 기준선을 누군가 실수든 뭐든 거친 구둣발로 걷어차 넘겨버릴 때,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게 뭐라도 되는 양 설명해댈 때, 나도 당신만큼 이미 알고 있어 아니 어쩌면 당신보다 더 잘 알지도 모르지, 그냥 내버려 둬 나는 이미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아니까 다 세워놨으니까, 조언하지 말아줘 도와주지 말아줘 추천하지 말아줘 네 영화 취향, 음식 취향, 음악 취향, 네가 살아가는 방식, 네가 생각하는 수입, 직장, 투자, 부동산, 주식, 사회생활, 우정, 사랑, 가족… 모두 잘 알겠는데 나는 내가 꾹꾹 눌러 담아온 방식이 있어, 방향이 있어, 정답이 있어, 구멍이 있어, 도망칠 수 있어, 알고 싶으면 물론 알려줄 수 있지, 그치만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거기에 네 방식을 더하는 순간 솔직히 굉장히 별로가 될 테니까…-
강아지가 좋아, 멍멍 꼬리 치며 내게 안겨서, 말랑말랑한 배 위로 난 솜털들에 입을 가져다 대고 바람을 북 불었을 때 깜짝 놀라는 그 표정이 좋아. 아기가 좋아. 아기가 나오는 영상은 끝날 때까지 넘기지 않고 보곤 해. 아기의 웃는 모습과 소리가 좋아. 아기가 울고 있는 모습도 좋아. 원망 어린 울음이 좋아. 나는 무력한 존재들이 좋아,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이 좋아, 한없이 내 존재와 무게감에 기대어 오는 모든 것들이 좋아. 모든 게 어렵고, 처음이고, 능숙하지 않은 실수투성이들이 좋아. 모든 것들이 처음으로 다가오는 존재들이 좋아. 좋아. 능숙해지지 말아줘. 익숙해지지 말아줘. 놓치지 말아줘 난처해져 오는 모든 것들을.
All by ador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