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혁 [FRIENDS + FAMILY]
이 순간을 지나쳐 보내기 싫은 아쉬운 마음이 컸던 걸까.
그래. 'Caffeine overdose'라고 하자.
연거푸 마셔 댄 커피 때문에 손을 떨어가면서도, 밤이 깊도록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엔 결국 결말을 알고 있는 옛날 영화를 다시 또 되감아 보고 있는 것 처럼 금세 뜨뜻 미지근 해져버리곤 마는 것이다.
이 '상온영화관 (常溫映畫館)' 에서 나는 또 그렇게 미지근한 이별을 맞이한다.
이 쯤 되면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내 마음 안에는 힘껏 언덕 위로 돌을 굴려 올리곤 금새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고 마는 죄수라도 살고 있는 것일까.
완전한 만족이란 없었다.
행복이란 잠깐 스쳤다가도 금새 휘발되어 버리고 만다.
오. 'My little Sisyphus'. 제발.
'그럼에도 지구는 돈다'.
내가 슬프건 말건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돌아간다.
나는 결국 사랑의 고통스러운 말단에서 친구들의 우정에 기대어 버티고는, 조금 살만 해진다 싶으면 다시 또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더라.
어쩌면, 인생은 이렇게 끝없이 원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매일 비슷한 일상 속에서 돌고 돌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버지 역시도 그랬을까?
나의 친구들은 그냥 참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
분명한 건 그들은 계속해서 나아갔고, 지금도 조금씩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인생은 사실 원이 아니라 나선이었다.' 라는 걸 깨닫는다.
그 후 다시 내 시작점 이었던 '水原으로' 돌아가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어딘가 미묘하게 달라졌음을 느낀다.
돌이켜 보면 20대 초반의 내게 수원은 너무도 춥고 낯설기만 한 곳이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과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 동시에 나를 괴롭게 했다.
그땐 그래서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매달려 버텨낼 수 있었겠지.
그러나 20대 중반이 지나갈 무렵, 다시 마주한 수원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내가 해야할 것과 할 수 있는 것 만이 중요하던 그 때.
프로 예술가 지망생들의 순례 길에서 벗어나 'Dilettante'의 길을 선택한 그 때.
여전히 혼란 속이지만 작은 의지가 되었던 것은 바로 'Family Legacies'의 존재였다.
냉정한 머리와 따뜻한 손바닥을 동시에 물려 받았던 탓에 주변에는 늘 좋은 사람들이 함께였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던 그러지 못했던 간에.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 줄여 말하자면 그 'FPF' 들이 끊임없이 공급해주는 사랑 덕분에 지금까지의 삶은 말하자면 썩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만약 어떤 기적적인 기회로 다시 되돌아가 두 번째 삶을 살아본다 해도 원래 것 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좋은 삶이었다.
친구들과 비행기 표를 끊어 놓고 금요일이 'FRI' 끝나갈 'ends' 무렵을 기다리는 설렘과 짜릿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테니.
외국의 어느 이름 모를 상점에서 'Vintage Chrome Hearts'를 쇼핑하는 것처럼 사실은 가짜일까 약간은 불안해 하면서도 동시에 즐거운 마음으로 나는 계속 살아간다.
또 다시 사랑할 누군가, 'Someone to Love !'를 찾아 헤매다가 때론 '교통섬'에 갇혀 기다림으로 기나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해도
결국엔 또 다시 'Caffeine overdose'의 순간이 올 것을 이젠 아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