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한 경험이 만들어낸 기억은 강렬하거나 본능적인 동물적 자아로 뒤엉킨 눅진한 찰나가 아니다. 오히려 발가벗음을 통해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본인을 탐구하는 연구의 과정이자 생존을 향한 생명의 언어로, 한 번의 강렬한 육체적 경험은 살아내고자 하는 삶을 영유하는 헌사에 가깝다. 격정적인 관계, 솔직한 욕망은 쉽게 퇴폐적인 어둠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기쁨과 쾌락, 그리고 살갗의 온기가 전하는 절정은 사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자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실용적인 기록이 그림이 되고 예술로 인지되기까지의 인간의 진화처럼, 번식과 생존이란 목적의 강압적 행위가 유희로 발전하고 정신적 사랑의 증명이 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은 카코포니에게도 유사하게 적용되며 성과 에로티시즘이란 단어가 주는 억압과 두려움의 이미지가 삶의 에너지로 변화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 앞에 표상된 세상은 절망과 황폐함으로 가득했다. 불안의 그늘이 그녀의 정신과 육체를 점령한 시기가 지속될수록 그녀의 삶은 악취가 벤 듯 쉽게 지워지지 않는 우울의 단상이란 벽에 가로막혀 울음을 참아냈다. 하지만 자신에게 예술이란 달란트(talent)를 쥐여준 어머니를 죽음 이후, 그녀는 끔찍했던 과거의 우울과 절규, 절망을 노래로 환원하고 토해낸다. 예술은 그녀를 폐허의 문을 열어 걸어 나오게 했으나, 발가벗은 아이 같은 마음은 사랑에 의해 다시 한번 상처를 받고 추잡하고 더러운 삶의 단면을 조우하게 된다. 그것은 다시 한번 그녀를 움츠러들게 하고 삶에 대한 의문과 불신을 가지게 했다. 그것은 피폐한 정신과 무너진 육체 속에 자학적인 고통을 느끼게 한다. 이제 그녀는 이 끔찍했던 상황 속에 질문을 던진다. 큐피드(Cupid)는 누구를 향해 활을 당겨 기쁨을 주고 어떠한 이유에서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로 사랑을 이분화하는가. 사랑의 끝은 결국 전쟁같이 서로를 죽이고 추락시키는 것일까.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이며 고통과 사랑을 구분하는 정확한 정의는 무엇인가. 큐피드의 이기적이고도 개인적 유희는 사랑의 양가적인 면을 둘로 쪼갠다. 한 사람에겐 끝없이 줄 수밖에 없는 숨막히는 적막 속 고독한 사랑을, 또 다른 사람에겐 끊임없이 받아내고, 혹은 도망쳐야 하는 차가운 증오와 잔인한 연옥에 빠지게 한다. 그런 큐피드에게도 프시케란 사랑(Amor)이 오고 그는 진정한 애정의 기쁨과 쾌락을 마주한다.
이처럼 큐피드의 화살 끝에 서 위태로운 애욕의 활을 맞고 추락하던 카코포니는 이제 큐피드를 뒤집어 ‘DIPUC’로 스스로를 정의, 자신이 사랑을 선택하는 신의 위치에 도전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탐닉당하던 그녀의 입술, 목과 어깨, 가슴과 다리, 주체성 없이 소모되던 부드럽고 연약한 여성의 육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강한 근육으로 폴(Pole)에 매달려 추는 춤처럼 온 힘을 쥐어짜듯 강렬하게, 주체적으로 ‘내게로 몸을 기대’라고 말하며 상대를 유혹한다. 육체와 정신의 성장은 그간 그녀가 겪어온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적인 실험, 애정이란 미명 하의 지배당하는 감정으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하며 한편으론 상대를 유혹하고 짓밟고 상처를 줄 수 있는 도미넌트(dominant) 적 자아로 성장했다.
‘End’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그녀는 불협화음(cacophony)이었던 지난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오는 방어기제가 아니라 상황을 뒤집은 새로운 사랑의 방식, 즉 에로틱한 상황에서의 황홀한 각성을 경험하게 한다. 이것은 어리고 미약하여 상처투성이였던 소녀의 마음의 성장 같은 동화가 아니다. 자기 자신의 매력을 컨트롤하며 상대가 자신을 갈망하게 만들 만큼 욕망에 솔직한 새로운 자아의 탄생이자 파괴적이지만 에로틱한 데카당스(Décadence) 문학이다.
‘Psyche’. 그녀는 독백같이 사랑의 가장 어두운 면을 깨닫고 읊어 내리지만, ‘변화’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나의 마음은 나의 것으로 누구의 것도 아니며, 나의 관능적인 몸은 오롯한 나의 소유물이다. ‘살아남은’에서 그녀는 깨끗함을 거부하고 땅바닥을 기는 지옥에서도 춤을 추며 즐기다 ‘MIRACLE!’에서 다시금 기적같이 사랑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 사랑은 이전과 다르다. 그녀의 삶을 압도하는 것이 아닌,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함이 아닌,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황홀한 환대다. 진정 나를 사랑해 주는 당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그것은 바로 ‘나’인 것이다.
이 앨범을 듣는 순간 그녀는 나의 심장을 조준했다. 나는 오늘 이후 그녀의 노래를 들은 모두가 평생 그녀를 잊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 것이다. 카코포니는 당신을 바라보며 활을 당기고 있다. ‘바로 지금’.
조혜림(음악 콘텐츠 기획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