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꽃을 피우길 바라며 [김홍남의 개화]
눅눅한 장판과 널브러진 술병들. 쾌쾌한 냄새가 뒤엉켜있는 홍남의 집.
벽 한편을 지키던 여름의 뜨거웠던 달력은 이미 낙엽이 되어 버려지고, 어느덧 세상은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창고 구석에 박혀있던 전기장판과 난로를 꺼내던 홍남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 심장 구석에 박혀있던, 피우지 못했던 꿈은 언제 꺼내는 걸까
겨울이 와 난로를 꺼낼 핑계를 대는 것처럼, 또 그리움을 달래려 괜한 안부 인사로 핑계 대는 것처럼
찬란했던 나의 꿈들은 언제 어떤 핑계로 꺼낼 수 있는가에 대해 말이다.
젊던 그 시절, 패기와 열정이 가득하던 그날
사랑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도 아낌없이 바칠 수 있었던 뜨거웠던 여름 날
파도가 만개하여 힘을 이기지 못한 채 내 젊음을 잘게 부셔놓고는 내 발바닥에 작디작은 모래 몇 알만 묻혀놨구나.
아니. 파도를 핑계 삼아 사실 나를 믿어주지 못하였구나
아, 난 그 바닷가에 많은 것들을 두고도 모른 채 살아왔구나.
그렇게 먼지 쌓인 난로 앞에 앉아 한참을 생각하던 홍남은 이 달력이 모두 뜯겨지기 전에
이것이 조금 이를지라도, 혹은 너무 늦었더라도 구석에 숨겨두었던 그 씨앗을 꺼내보려 한다.
다시 한번 꽃을 피우길 바라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