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광 [말씀대로 찬양 9]
"말씀대로 찬양" 9번째 _ 시편3 구원은 여호와께
우리가 읽고 고백하는 시편 중에 대부분은 다윗이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입니다.
그 많은 기도의 시, 찬양의 시, 간구의 시 중에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면, "원수", "대적" 일 것입니다.
이 원수와 대적을 처리해 달라고 위대한 왕 다윗이 얼마나 울고 불고 간절한 지 모릅니다.
다윗에게 원수는 그야말로 다윗과 이스라엘 민족의 위협이 되는 이방 민족들이 원수일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방 민족이 원수가 되었던 때보다, 같은 형제인 북이스라엘 지파가 원수처럼 남유다를 힘들게 할 때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을 보호하던 신하 중에 다윗에게 원수처럼 다가오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다윗을 저주하고 비방하고 위협하던 이들이 측근 중에 있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런 수많은 대적들보다 더 고통스러운 원수가 있다면 오늘 시편3편의 주인공인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사랑했던 다른 아들보다 더 사랑했고, 아름다웠던 존재였습니다.
그 아들이 대적이 되어 아비 다윗을 모반하고 공격해 올 때 다윗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나의 자녀가 성장해서 효도를 해도 시원치 않은데, 어느 날 나를 배신하고 나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면 부모된 우리의 심정은 어떤 마음이 되겠습니까?
다윗에게 왜 이런 일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까?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 원수 대적이 되어 나를 고통의 늪 가운데로 끌어갈 때 다윗은 오늘 이 찬양을 지어 불렀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 나의 구원자"
이런 고통 속에서 다윗은 진짜 용사가 되어갑니다.
이방 민족의 대적, 신하의 대적, 자녀의 대적의 고통을 지나가면서 다윗은 마침내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6절, "천만 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어쩌면 압살롬 단 한 명의 대적이 천만 명이 에워싸 진 친것보다 더 아프고 고통스럽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 시간을 견뎌낸 다윗은 천만 명을 싸워 이길 수 있는 그런 용사가 되었습니다.
믿는 자에게 왜 이렇게 고통의 시간들이 주어질까요?
답이 오늘 말씀 속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마침내 천만 명이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고 일어나 주님을 찬양하는 자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 나의 구원자"
여러분을 고통의 늪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대적은 누구입니까?
그 원수를 직접 처리하지 마시고, 말씀을 묵상하며 이 찬양을 함께 고백함으로 이 고통의 시간을 잘 견뎌내시길 축복합니다.
이 시간이 지난 후에 당신은 다윗처럼 천만 인에게 둘러싸여도 두려워하지 않는 영적인 실력자로 강해질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