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셀리셀리느 4집_시도미]
하나의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 아직 시작되지 않은 음악의 사이 손으로 날카로운 기타줄을 쓸어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음을 시작으로 그의 음악이 마음을 찌른다. 나는 바늘에 찔린 손가락을 지그시 누르듯 마음이 있을법한 몸 어딘가를 눌러본다. 일그러진 마음과 마음의 사이. 쓰라리지만, 미묘하게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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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드러낼 수 없는 기괴함과 투박함, 불안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에서 마음을 찔러 삐죽빼죽하게 만든다. 마치 바늘이 잔뜩 꼽혀있는 낡은 반짇고리 같다. 그곳에 꼽힌 바늘의 개수와 상관없이 ‘반짇고리’가 되어버린 것처럼, 삐죽빼죽한 마음은 뭉뚱그려 외로움이 된다.
셀린셀리셀리느가 보여주는 것은 반짇고리 속 작은 바늘들이다. 그것은 외로움이라는 이름의 괴상함, 우울함, 불안, 이룰 수 없는 바람,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감정들이 모인 반짇고리일 뿐. 예민하게 바늘을 알아차린 그는 스스로 하나씩 가시를 뽑아내어 보여준다. “봐, 이건 그저 바늘일 뿐이야.” 그의 말과 동시에 내 마음 속 바늘 하나도 툭 떨어진다. 작은 알아차림으로, 친절하지 않은 공감으로.
뽑아진 바늘은 더 이상 외로움이라는 뭉툭한 형태가 아닌 고유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괴랄할 정도로 춤을 외치는 ‘시도미’의 모습은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욕구를, ‘오직 둘만이’에선 사랑과 동시에 찾아오는 은밀한 불안을, ‘어디의 어디즘’에선 자신을 향한 자신과 의심을 보여준다. 언뜻 보기에 4집에 모여진 곡은 ‘불규칙하다’라는 인상을 주지만, 이는 내면의 감정과 다르지 않다. 모든 감정은 양가적이고 불규칙하다. 그 모습을 가감 없이 보이는 셀린셀리셀리느. 그는 음악으로 자신을 꾸며내기보다, 그저 음악 앞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끊임없이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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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음악으로 돌아온다. 어지럽혀진 비트, 그 위를 채우는 기타의 화음,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비련한 외침. 어두운 조명 사이로 셀린셀리셀리느의 음악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위로라고 하기엔 따뜻하지 않다. 오히려 마치 찬물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 시리다. 피부는 차가워지는데, 마음에는 열이 오른다. 분노도, 온기도, 희망도 아닌 것이 스스로 열을 낸다. 조금 더 뜨거워진다면 푹 녹아서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다. 날카롭게 관통한 바늘은 이미 떨어져 나갔다. “대단해지고 싶은 마음과 단단해지고 싶은 마음 사이 어디의 어디즘일까. 어설픔과 집요함의 어디의 어디즘일까.” 천천히 녹아가는 마음은 어디의 어디즘으로 흘러간다. “아버지 나는 잘한 것이 없죠. 하지만 잘못한 것도 없어요. 우린 각자의 길을 걸어가죠. 평행하다가 교차되기도 했죠. 어머니, 나는 잘 지냅니다. 어느때보다 평온합니다.“ 나지막한 기도로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알린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어디쯤에서 그 어느때보다 평온한 마음. 조각난 외로움은 이제 외로움이 아니다. 분해되고 분해되어 아무것도 아니게 돼버린 마음일 뿐이다.
_[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저자 이수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