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벤쵸스', '전통가요'를 연주하다
이 음반은 '애드 훠(Add 4)'의 이름으로 1968년에 나왔다. 그렇지만 음반의 주인공인 애드 훠는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존재했다. 신중현의 경력을 더듬어 보면 1966년에는 조커스(Jokers)와 블루즈 테트(Blooz Tet)를 결성했고 1968년에는 덩키스(Donkeys)를 결성한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 음반의 발매 시점은 묘연하다. 덩키스를 결성하기 직전이자 펄 시스터스의 "님아"의 작곡가로 유명해지기 직전이다. 또한 한 문헌에 의하면 이 음반의 주인공은 애드 훠가 아니라 블루즈 테트라고 나와 있는데(음반의 일련번호가 일치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음반의 주인공은 블루즈 테트가 아니라 '한국의 벤쵸스 Add 4'다.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은 음반 표지다. 늘씬한 백인 미녀 네 명이 수영복을 입고 해변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다. '박정희 정권 치하'라는 시대 상황을 떠올리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표지다. 아마도 이런 표지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직 [음반법]이 시행되기 이전'이라는 시점 덕택이 클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음반은 '검열 이전'에 나왔다는 뜻이다. 동시에 당시 저런 정도의 미국 대중문화가 이미 한국에 유입되었다는 사실도 짐작할 수 있다.
애드 훠를 '한국의 벤쵸스(벤처스)'라고 명명한 것은, 벤처스(The Ventures)가 맹아기의 한국 록에 미친 영향력을 보여 준다. 초기의 그룹 사운드에게 벤처스의 레퍼토리는 '필수'였고, 그 중에는 당시 발표된 벤처스의 전곡을 커버 연주하는 존재들도 다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 가장 유행했던 기타 모델이 펜더 재즈마스터였다는 점도 벤처스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흥겹고 즐거운 벤처스의 기타 사운드는 도시화가 시작되면서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긍정적인 기대와 반응이 반영된 결과로 보아도 될 것이다.
물론 이 음반에서는 춤(댄스)이라는 기능적 목적도 중요해 보인다. 따라서 이 음반은 히키 신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히키-申 키타 멜로듸 경음악 선곡집](1995)과 애드 훠의 [한국의 벤쵸스 Add 4: 신중현 경음악 편곡집 Vol. 1](1966)(이하 '1966년 음반'으로 약함)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자, 신중현의 '경음악 음반'의 한 단계를 나타내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의 벤쵸스'가 연주한 이 음반의 수록곡들에 벤처스의 커버곡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샹하이 투위스트"와 "와이퍼 아웃" 등 벤처스의 곡이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곡들이 이 음반의 주된 음악적 컨셉트는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트랙들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홍도야 울지 마라", "열 일곱 순정", "목표의 눈물" 등 한국의 '전통적' 대중가요를 벤처스 스타일로 편곡하여 연주된 곡들이다.
그 점에서 이 음반은 '1966년 음반'과 비슷한 컨셉트를 가지고 있지만 보다 더 '전통가요'에 충실하다. 이는 일단 레퍼토리 면에서 찾을 수 있는데, '1966년 음반'이 미 8군 무대와 연관된 레퍼토리를 주로 골랐다면 이 음반은 국내의 '일반 무대'에서 연주되는 레퍼토리를 주로 골랐다는 점이 주목된다. 또한 악곡의 형식이나 멜로디 라인뿐만 아니라 리듬 패턴 면에서도 이 음반은 한국 대중가요의 전통적 어법에 충실한 편이다. 빠르지 않은 템포로 '뽕짜자 뽕짝'하는 바로 그 리듬이 여러 트랙들에서 등장한다(반면 '1966년 음반'은 벤처스 음악의 템포와 비슷하다). 사람 목소리가 아닌 기타로 연주하는 멜로디를 부담없이 흥얼거릴 수 있는 점도 이런 음악적 특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참고로 이 음반에서 보컬은 신중현이 직접 작곡한 "빗속의 여인"에만 여성 코러스로 들어 있는데, 이런 점 때문에 이 트랙은 노래방 반주와 흡사하게 들린다.
물론 신중현의 기타 연주는 단지 트로트를 '반주'하는 수준을 넘어서고, 그래서 "홍도야 울지 마라" 같은 트로트 곡들은 보컬이 없는 벤처스 스타일로 편곡되면서 기묘한 변종으로 재탄생한다('보컬 없는 트로트'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혹시 '신중현의 기타 연주 음반'이라는 정보만을 믿고 이 음반을 덜컥 구매한다면 이 음반에 실망하게 될지 모른다. 그보다는 신중현의 '한국적 록'에 붙어 다니는 '숨어있는 뽕끼'의 근원을 찾으려는 사람에게 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물론 '뽕끼'에 대한 가치판단은 한국인들에게는 풀리지 않은 숙제다.
P.S.
리뷰의 대상으로 삼은 음반 표지 뒷면에는 개별 곡마다 DG ***, SH ***, K.L.S ***라는 일련번호가 적혀 있다. 각각 당시의 레코드회사인 대지, 신향, 킹의 고유번호이다. 이는 이 음반이 '편집된' 음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정보이다.
- review from 송창훈 (anarevol@nownuri.net, 200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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