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향(南向)> 우리는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적도 가까이 뜨거운 곳으로, 익숙해서 고마운 친구들과 함께. 여름을 찾아 남쪽으로 향했다. 이번 행선지는 길리 트라왕안.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배로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부처님 손바닥만 한 섬이다. 거기엔 모터 달린 자동차와 경찰이 없다던데···. 정말 길리는 ‘코모도’ 마차와 걸음만으로 어디든 다닐 수 있을 만큼 낭만적일까. 모르긴 몰라도 경찰이 없다는 건 설레는 일이지. 여행이란 어쩜 이렇게 가슴 뛰는 순간을 선물하는 걸까.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다. 게다가 길리는 서울보다 한참 남쪽에 있어 여름이 펼쳐져 있을 테고, 자연 그대로의 목가적인 해변도 있을 터. 곁에는 언제나처럼 익숙한 친구들이 있으니 겁날 것도 없다. 그나저나 우리가 함께 남국을 누빈 게 몇 번째더라? 당연하게도 각자의 악기를 들고 왔구나. 우리는 밴드라는 명분으로 영감을 찾아 매년 남국을 누비는 친구들. 세상은 우리를 CHS라고 부른다네. 길리가 지구에 숨은 천국인지, 천국은 그런 곳일 거라던 사람들의 상상이 하필 맞아떨어진 건지, 석양처럼 흐드러지게 웃는 사람들의 환대는 우리를 한껏 들뜨게 했다. 고맙지만 우리는 해변으로 가야 해. 자석처럼 이끌려 백사장에 도착했다. 자신을 이 동네 홍반장 쯤으로 소개하는 처음 만난 비치 보이와 자연스럽게 하이 파이브를 나누며 빈땅을 주문했고 쏜살같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풍덩. 푹푹 찌는 날씨 덕에 끈적해진 몸을 바닷물로 씻어내는 순간의 상쾌함. 쏟아지는 볕이 바다를 만나 아지랑이를 피는 걸 볼 때의 황홀함. 이 섬을 가장 느긋하게 즐기는 바다거북이가 발밑에서 헤엄치는 걸 볼 때의 신비로움. 이토록 목가적인 순간을 익숙한 친구들과 함께 누리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때의 편안함까지. 친구들아, 우리 여름을 삶의 방식으로 삼길 참 잘했다, 그치? 한참을 놀다 멋대로 휘어진 코코넛 나무 아래 모여 이글대는 석양을 본다. 감상에 젖어 식은 빈땅을 마저 비운 뒤, 어둑해질 때쯤 엉덩이 툭툭 털고 일어나 숙소로 향한다. 세월아 네월아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며 비치 라이프가 일상처럼 편안해졌을 때, 우리는 숙소의 돌아가는 실링 팬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자연스럽게 악기를 꺼내 들었다. 길리의 파도 소리라며 기타를 튕기는 친구를 보며 깔깔 웃다가, 늦여름의 볕은 이런 박자로 내린다며 드럼을 두드리는 친구가 거들었고, 바다거북이가 수영하는 순간에 어울리는 소리라며 건반을 치는 친구까지 가세했다. <남향>은 그렇게 완성된 더블 싱글이다. CHS 멤버들이 각자의 악기로 남국에서 보낸 추억을 연주한 두 곡이다. 인도네시아어로 바다거북이를 뜻하는 ‘KURA KURA’는 길리 해변에서 누린 목가적인 나날에 대한 감상이고, ‘늦여름’은 제목처럼 이 계절이 가장 선명한 빛을 내는 순간을 각자의 악기로 재현한 곡이다. 그러니까, <남향>을 도무지 질릴 틈을 주지 않는 여름을 향한 CHS의 찬가라 말해보면 어떨까. 볕에 의해 찡그리지만 어쨌든 웃음이 나는 이 계절을 음악에 담아 모두와 나누는 일. CHS는 여름을 찾아 다시 남쪽으로 향할 것이다. 익숙해서 고마운 친구들과 함께.
Text 양보연 프리랜스 에디터 겸 CHS의 여름 친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