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OY [PLEASURES] 우리가 쌓아온 그 기쁨들
행복한 순간 습관처럼 슬픔을 떠올리는 부류가 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들일 것이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절대 돌아오지 못할 이별의 길을 떠올리거나, 소중한 이의 따뜻한 품에 안긴 채 아무리 소리쳐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상상하는 그런 사람들. 그들도 애써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 따라 다른 기질 가운데 특별히 발달한 부분이 그곳인 걸 어쩌랴. 그러나 ‘기쁨들’이라는 단어를 앞세운 아도이의 새 앨범, 그것도 두 번째 정규 앨범을 들으며 그런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머리로는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슬픈 이들의 이야기가 마음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2017년 데뷔해 올해로 7년 차에 접어든 밴드 아도이의 이름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단연코 ‘청춘’이다. 이제 막 심호흡을 하기 시작한 새 이파리처럼 아직 모든 게 낯설고 불분명한, 생에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푸릇푸릇한 시절. 밴드 아도이가 그리는 온통 울렁이는 그 특별한 시절 한가운데 단 하나, 사랑만이 선명했다. 허공으로 흩어지던 고백이 어느새 한 점에 모여 너라는 뚜렷한 형체를 만들던 [her](2021), 눈부신 선명함 아래 오히려 흐릿하게 가라앉기를 택한 [VIVID](2019), 무엇보다 사랑만으로 만들어진 순도 높은 순간들을 하나씩 수줍게 꺼내 놓던 [LOVE](2018)가 있었다. 그런 그들이 2년 만에 발표하는 두 번째 정규 앨범 [PLEASURES]다.
그렇게 오직 사랑만이 선명한 동안, 밴드 아도이도 크게 성장했다. 라이브 클럽과 국내 주요 록 페스티벌 무대를 거쳐 이제는 다양한 국가에서 단독 공연을 너끈히 열 수 있는 규모의 밴드가 되었다. 바이러스의 습격을 이겨내고 다양한 온라인 기획에 참여하며 꾸준히 라이브를 들려준 것은 물론, 2022년에는 미국, 2023년에는 유럽 시장의 문까지 두드렸다. 올여름에는 그동안 여러 방식으로 교류해 온 다국적 아티스트들과 함께 [us]라는 이름의 의미 있는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결성한 밴드로서 지금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해보겠다는 의지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PLEASURES]는 그래서 반갑고, 그래서 다행인 앨범이다. 앨범에 담긴 여덟 곡은 우리가 기억하고 사랑해 온 아도이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첫 곡 ‘In Love’의 포근한 울림, 선공개 곡이었던 ‘Model’의 두근대는 심장박동을 닮은 비트, ‘Avenue’의 대책 없는 낙관까지,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 ‘아도이 풍’이라 통용되는 음악의 총합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드림팝, 칠 웨이브, 신스팝 등 아도이의 음악에 기대한 거의 모든 것이 부지런하고 익숙하게 당신을 사로잡는 사이, 이들은 숨은 변화의 기색을 앨범 구석구석에 심어 놓는다. 보컬 오주환 대신 건반의 ZEE가 노래를 중점적으로 담당한다거나, 아름다운 달빛 아래 꿈 같은 왈츠를 권하는 노래에 ‘Hack’이라는 까칠한 단어를 제목으로 붙인다던지 하는 식이다.
그 가운데 가장 의외의 파트라면 역시 앨범의 마지막에 놓인 ‘One Last Song’과 ‘Jet’이 만들어 내는 묘한 조화가 아닐까 싶다. 메시지와 곡조 모든 면에서 마지막 곡임을 내뿜고 있는 ‘One Last Song’이 끝난 뒤, 앨범은 다시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는다. 마치 우리의 노래가 아직 남았다고, 아직도 모아야 할 사랑의 기쁨들이 이렇게 많다고 항의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앨범에 담긴 기쁨은 기쁨 그 자체로서의 기쁨이 아닌, 기쁨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 자꾸만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곱게 모아 담은 반짝이는 기쁨의 순간들이구나.
2017년 어느 날, 아도이의 첫 앨범 [CATNIP]의 라이너 노트를 쓰며 이 팀의 음악을 ‘젊음과 청춘의 잔상’이라 표현한 기억이 있다. 첫발을 내딛는 신인 밴드에 ‘지나고 난 흔적’이라니, 지금 와 생각해도 종종 너무한 어휘 선택이 아니었나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도 어쩐지 그렇게 힘주어 말해버리고 싶은 음악이었다. [PLEASURES]를 들으며 그 첫 느낌을 떠올렸다. 청춘의 새 푸른 여름을 상서롭게 뒤덮고 있던 희뿌연 세피아 필터의 정체를 이제야 알 것 같다. 확신에 가득 찬 제목 ‘기쁨들’은 어쩌면 현재진행형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과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기쁨들에 가까울 것이다. 아도이의 음악에 내내 감도는 애수의 근원도 여기에서 찾아본다. 그 애달픈 자리를 아도이라는 밴드가 걸어온 길 위에 놓인 사랑이 메운다. 오랜 시간 모두가 소중히 나눠 가진 기쁨의 구슬이 제 몫의 빛으로 반짝인다. 사랑도 삶도 마냥 쉽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성실히 모은 기쁨들, [PLEASURES]다.
김윤하 / 대중음악평론가
Performed by ADOY
Guitars by 박재희 Jaehee Park (except track 7), 문원우 Moon (track 7)
Drums by Chuck Sabo (track 3)
Mixed by 김대성 Daesung Kim at TONE Studio
Mastered by Greg Calbi, Steve Fallone at Sterling Sound
Album Artwork by Jon Burgerman
Logo by 전채리 Charry Jeon at Content Form Context
Photography by 손동주 Dongjoo Son
An ANGEL HOUSE Productio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