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 태운 여섯 종이비행기의 이륙. 과연 누구의 마음에 착륙하여 도란도란 읽히려나.
1. 이상비행
Written by 한로로
Produced by 이새
「나의 여름은 습한 이상들로 가득합니다. 푸른 하늘이 연속되는 날, 그들은 움츠렸던 몸을 꾸물거리기 시작합니다. 아주 요란하게도 말이지요. 소음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나의 것들에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붙입니다. “이상한 이상.” 깔깔깔. 그러나 그 웃음에는 왜인지 모를 슬픔이 묻어나 있는 것 같아요.
무튼, 나는 이 하찮은 종이 쪼가리를 빌려 꼭 말해야겠습니다. 이상이 심심한 결과물이었다면 나는 애초에 과정에 뛰어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유일한 탈출구이자, 당신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인 걸요. 그러니 부디 나와 함께 떠납시다. 마음 벅찬 비행을 합시다. 나는 저들 말대로 이상(異常)한 이상(理想)을 꿈꾸는 청춘이자, 당신이니까요.」
2. 해초
Written by 한로로
Produced by 이새
「작은 섬의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지고 싶지 않았어요. 턱이 아릴 정도로 이를 바득 깨물곤 주변을 경계하는 습관을 가진 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패배합니다. 이 섬의 시스템을 조작하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 확신될 만큼요.
그러던 내가 처음으로 바다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푸른 바다 끝자락 놓인 알 수 없는 섬을요. 저기엔 과연 어떠한 사랑이 있을지, 있기는 한 건지. 새 모래알을 직접 밟아보고 싶어졌어요. 여러 번의 두려움이 한 번의 설렘에 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답을 떠올리려 눈을 감았고, 팔다리에 힘을 풀었고, 마침내 나는 바다 위에 떴습니다.
벌써 저 섬에 도착한 것만 같아요.」
3. 화해
Written by 한로로
Produced by 이새
「나는 이 세상이 혼란스럽습니다. 온전히 사랑만 해도 숨 가쁜 삶에 무책임한 것들을 떠넘기니까요. 그로 인해 생겨나는 모난 감정들을 숨기려 품에 안고 다녔지만, 마음만이 곪을 뿐이었지요. 둥근 척하기 바빴던 나의 과거는 부끄럽다가도 안쓰럽습니다. 그때의 나는 겨우 지금의 내가 되어 펜을 잡아 봅니다.
나는 이 세상에 화해를 신청합니다. 못난 마음을 과감히 인정하며, 앞으로 일어날 사고들에 묵묵히 맞서야 할 어른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그러니 부디 날아오르는 나를 동정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선물할 깊은 사랑을 반드시 알아 올 테니.」
4. 금붕어
Written by 한로로
Produced by 이새
「어항에 있을 적엔 바다를 꿈꿨습니다. 깨부순 어항을 벗어나 도착한 바다는 참 넓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짭짤한 눈물, 먹이를 찾아 바삐 떠도는 행인들, 그 먹이가 내가 될까 잠 못 이루는 공포심으로 가득합니다.
갈망은 끝없이 넓어지고, 바다는 힘없이 좁아지고 있어요. 바다의 바깥을 죽음으로 여기는 이곳은 탁한 우울을 정화시킬 수 없어요. 덕분에 나는 저기 저 맑고 푸른 지상을 올려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오랜 밤을 설친 나는 마침내 수평선 위로 치솟는 중이에요. 붙잡는 물살을 뿌리치고 아주 빠른 속도로 말이죠. 차가운 공기와의 첫 만남이 숨 막힌다 한들 힘껏 웃을 거예요. 나의 죽음을 내가 결심할 수 있다는 건, 그 죽음의 직전에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건 꽤나 벅차오르는 일이니까요.」
5. 자처
Written by 한로로
Produced by 이새
「나의 고통은 전부 나의 것입니다. 결국엔 스스로가 모두 자처한 것들. 상대를 탓하다가도 모든 원인은 내가 되는 것만 같아요. 그렇기에 나는 과거에서 쉽게 벗어날 수도, 후회를 쉽게 보내 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나의 몸과 마음에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쌓여있어요.
수많은 경험들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이미 떠나버린 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슬픔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러다 서서히 적응하는 것. 흩어져 사라지는 것.
그렇게 잊어가는 것.」
6. 사랑하게 될 거야
Written by 한로로
Produced by 이새
「이 마지막 종이를 날리기 전까지 정말 많이 고민하고 울었습니다. 사랑이라는 어려운 것을 너무 쉽게 쓰는 것만 같기 때문이에요. 그치만 어려워도 하고 싶은 것이니, 해야만 하는 것이니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을 담아 봅니다.
나는 이제 세상의 사랑, 사랑의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미움이 차올라 눈물 날 때면 당신께 보낸 이 글을 되새기며 살아갈 거예요.
그러니 당신도 나를 사랑해 주세요. 당신을 비롯한 당신의 것들을 사랑해 주세요. 우리는 그렇게 되어야만 하고,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예요.」
무사히 착륙을 마친 나의 비행기들이 당신의 마음속에 영원히 연착되기를 바라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