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목소리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노래하는 예술가 펜 릴리(Fenne Lily)
영국에서 태어나 현재는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펜 릴리는 친밀한 어쿠스틱 포크와 인디 록을 오가며 개인적인 노래들을 만들고 부른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TV를 못 보게 해서 대신 레코드를 함께 들었고, 15세 무렵부터 곡을 썼다.
그리고 2018년 데뷔 앨범 [On Hold]가 공개했다. 펜 릴리의 10대 시절을 고스란히 담은 곡들은 딱 그때 할 수 있는 노래들이었는데, 무엇보다 이별 후 감정의 소용돌이를 적나라하게 기록해냈다. 미국에서는 루시 데이커스(Lucy Dacus)와 투어를 진행했고, 레이블 데드 오션스(Dead Oceans)와 계약했다.
이후 발표한 앨범 [BREACH]는 펜 릴리의 20대를 다룬 작품이다. 이전보다 훨씬 친밀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단순히 고독을 주제로 한 곡들을 쓰는 것 이상으로 확장된 내용, 그리고 음악적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주로 자신의 불안과 상처를 반영하고 있지만, 활기찬 에너지로 하여금 감동적인 모습 또한 감지되는 작품이 됐다. 특히나 'Berlin' 같은 하이라이트 트랙은 자신의 고립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광경을 성공적으로 연출했다.
[Big Picture]
"내게는 이 앨범의 톤에 대해 확실한 목적이 있었다. 지나간 일이라던가, 잃어버린 것 그리고 더 잘할 수 있었던 것에 관해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일반적으로 절망을 피하려 했는데, 왜냐하면 이 노래들이 팬데믹 이후에 공개될 것이고 아무도 그 당시의 암울함을 상기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펜 릴리
이전 앨범 [BREACH]부터 미국에서 녹음을 전개했는데, 2년 반만의 새 앨범인 [Big Picture] 또한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브래드 쿡(Brad Cook)을 프로듀서로 맞이해 작업했다. 브래드 쿡은 '인디 신의 비밀 병기'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애호되는 프로듀서로 본 이베어(Bon Iver), 워 온 드럭스(War on Drugs), 스네일 메일(Snail Mail) 등과 함께 작업해왔다.
과거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펜 릴리의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를 다뤄내고 있는 신작 [Big Picture]는 관계의 시작과 끝을 추적한다. 앨범은 2020년 시작된 전 지구적 재난에 대한 일종의 질서를 가져오는 시도이기도 했다는데, 그 당시 가장 취약한 부분을 기록함으로써 일종의 자율성을 되찾아가는 것 같다 밝혔다. 자신의 치유 활동을 위해 만든 음악처럼 들리는 이 앨범은 결국 멋진 카타르시스의 순간에 도달해낸다. 단순히 슬픈 앨범이 아니라고 밝혔는데 사랑은 일종의 과정이며, 잃어버리거나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과거 두 장의 앨범 [On Hold]와 [BREACH]는 모두 지나간 사랑에 대한 회고와 고통에 맞서고 있지만, [Big Picture]는 바로 지금의 상황을 다루면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붕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의식적으로 녹음 과정을 협업적인 형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무엇보다 따뜻하고 정직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만드는 방향을 의도했다고 한다.
앨범에서 가장 처음으로 공개된 'Lights Light Up'은 담담하면서도 개방적인 노래에 개인적인 감정을 탐구하면서 보편적인 팝송으로 완성됐다. 이 곡에서는 유독 수잔 베가(Suzanne Vega)의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한다. 푸른 색상의 방, 그리고 뉴욕 길거리에서 촬영된 비디오 또한 곡의 오밀조밀함을 더하는데, 참고로 그녀가 비디오에서 연주하는 기타는 푸 파이터스(Foo Fighters)의 크리스 쉬플렛(Chris Shiflett) 모델 텔레캐스터이다.
'Dawncolored Horse'는 펜 릴리가 곡을 쓸 무렵 들었던 오래된 컨트리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 따뜻하고 편안하게 들리는 모든 것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을 연주한 곡으로 불안정한 장소에서 만들어졌지만 결국 안정적이라 느끼게 됐다고 한다. 확실히 창법과 멜로디에서 컨트리적인 부분들이 감지되곤 하는데, 밤에 혼자 썼다는 'Superglued' 그리고 친숙한 리듬의 'Pick' 같은 트랙에서도 컨트리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작곡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In My Own Time'은 지나치게 빠르기도, 혹은 지나치게 느리기도 한 시간에 관한 사색을 다루고 있다. 곡의 낮은 템포 그리고 발성의 호흡 등이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 캐스린 윌리엄스(Kathryn Williams)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감미롭고 차분한 노래와는 달리 엉망진창이 되는 펍을 고속 촬영으로 담아낸 비디오 또한 묘하게 아이러니하다.
백일몽 같은 분위기와 목소리로 앨범을 여는 'Map of Japan', 아찔한 빛 같은 리드 기타가 곡을 드라이브해 나가는 '2+2' 그리고 목가적인 'Red Deer Day' 등에서 사색적이면서도 솔직한 펜 릴리 특유의 곡들이 전개된다. 큰 여백이 울림을 더하는 곡 'Henry'의 제목은 국내에는 [북회귀선]으로 널리 알려진 논쟁적인 소설가 헨리 밀러(Henry Miller)에게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이전 앨범 [BREACH] 발매 한 달 후에 만든 신비로운 곡 'Half Finished'가 앨범의 마무리를 장식한다.
펜 릴리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발산해내는 방식을 창작 활동을 통해 모색하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은은하게 들리지만, 정서적으로는 격동하고 있으며 생동감 넘치는 가사는 불안과 로맨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녀가 지닌 따뜻하고 조용한 자신감은 노래를 가치 있게 만드는 데에 꼭 화려하거나 극적인 것이 필요하지 않음을 증명해낸다.
펜 릴리는 자신에게 있어 가장 음악적으로 매력적인 순간을 성실히 포착해냈다. 여전히 불확실성에 관해 노래하고 있지만, 이는 신중하며 또한 숭고하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투명하게 표출해내고 있는 이 결과물은 큰 드라마나 굴곡이 없어도 충분히 듣는 이들의 감정에 거대한 파도를 일으킨다. 이 생생하고 부드러운, 무엇보다 개인적이고 독특한 음반이 지닌 성장의 기운은 그녀가 느끼는 불안감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든다. .... ....